[생활실용] '미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소
원제 Sourire aux eclats
소피 쇼보 지음, 진인혜 옮김
영림카디널, 303쪽, 9000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 눈썹이 왜 없는지, 모델의 정체는 누구였는지 지금까지 수많은 해석과 공상을 낳고 있다.
그 논쟁의 한가운데에는 모나리자의 이상야릇한 ‘미소’가 자리한다. 어떤 이는 그녀가 슬퍼하고 있다고 여긴다. 혹자는 그녀가 임신 중이어서 행복해 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이도 저도 아니면, 몇시간에 걸친 모델 노릇에 엉덩이와 다리가 저린 나머지 ‘좀 쉬다 합시다!’라고 화가에게 사인을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체의 소리 없이, 이렇다할 표정의 변화 없이, 오직 입가에 살짝 번지는 미소. 이 간단한 얼굴 근육 움직임이 수만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주목한 이는 별로 없다. 웃음이나 슬픔을 연구한 논문은 많아도 미소에 관한 자료는 적다고 한다. 이쯤에서 웃음과 미소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웃음은 미소에 비해 단순하다. 웃음은 급격한 행동의 변화다. 그러나 미소는 다르다. 미소는 소리의 갑작스러운 폭발이나 움직임 없이 점진적으로 생겨난다. 눈물이 나거나, 오줌을 쌀 정도로 미소를 짓는 사람을 본 일이 있는가.

저자는 우리가 무신경하게 바라본 미소에 대해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교차시키며 심오한 의미를 하나둘씩 건져 올린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미소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프랑스어 ‘미소(Sourire)’의 어원을 따져가면 ‘얼근한 취기, 야유, 조소’라는 뜻의 고대 프랑스어에 닿는다. 억눌리고 의뭉스러운 웃음을 가리켰다. 중세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미소는 악덕이었다. 그러나 점점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미소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훌륭한 사교 도구로 변신한다. 의미 파악이 무척 힘든 이 미소의 속성은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위장술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소의 종류는 몇가지나 될까. 승자의 미소, 소심한 사람의 미소, 죽기 직전의 미소, 쓰라린 미소, 노인의 미소, 갓 태어난 아기의 미소…. 상황에 따라, 나이와 직업·심리 상태에 따라 미소의 의미는 시시각각 의미를 달리한다.

프랑스의 한 철학자는 “얼굴이라는 무대는 비록 협소하지만 무수한 조합을 만들어 낸다. 무대장치는 동일한데도 그곳에 수많은 단역배우가 등장한다” 고 말했다. 눈물이나 웃음도 그렇겠지만 그 역할을 가장 훌륭히 수행해낼 수 있는 단역배우는 단연 미소일 것이다. 지금 옆사람을 쳐다보라. 미소 짓고 있는가. 그럼 그 사람의 마음 궤적을 따라가 보라. 수만 갈래 의미 중 하나를 잡아내게 될지 모르니.

박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