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가는간이역>19. 정선 여랑역 (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샘물과 빗물이 졸졸 흘러들어 이룬 실개천이 내(川)가 되고 내는 강으로 보다 큰 그 무엇을 향해 흘러간다.태백산에서 발원,하장~골지~임계를 거쳐 내려온 골지천과 오대산에서 흘러온 송천은 아우라지에서 합쳐져 비로소 강의 모습을 갖춘다.

아우라지에서 걸어서 10분거리에 정선선 여량역이 있다.정선땅을 거치며 조양강이 되고 영월에서는 평창강과 만난다.이렇게 제천~충주~여주를 지난 남한강은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이 된다.

태백지역에서 벌채된 원목이 골지천을 통해,오대산에서 잘린 원목은 송천을 따라 아우라지로 내려왔다.

여기서 철떡꾼(물위에 무질서하게 놓인 나무를 바로잡아놓는 사람)들이 떼(뗏목)를 만들었다.

영월 동강까지 힘겹게 내려온 자그마한 떼는 큰 떼로 합쳐진다.앞사공이'돼지우리(떼가 뒤엉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빙글빙글 도는 현상)'가 치지 않을 정도로 물길의 방향을 잡으면 뒷사공이 보조를 맞추며 남한강을 따라 서울까지 올라갔

다.

남한강변에는 물길을 따라 떼를 몰았던 이들의 애환이 곳곳에 어려있다.정선읍에서 만난 우리시대 마지막 떼꾼 신경우(申景雨.75.강원도정선군정선읍북실1리)할아버지.그는 18세부터 뗏목을 몰기 시작했다.약 40년간 뗏목에 몸을 싣고 남

한강 물길을 오르내리다 지난 82년 영월댐이 들어서면서 손을 놓았다.

겨우내 강가에 놓아둔 나무를 엮어 동강 물길을 따라 내려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신할아버지는“영월까지 많은 여울을 만나는데 그중 황새여울과 된꼬까리가 가장 험했어.

이곳은 바닥에 돌이 많아 떼가 많이 깨졌고 심하면 물에 빠져 죽는 사공도 생겼지”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그래서 물길이 가장 험했던 만지산(된꼬까리 부근)에서는 사나흘 머물며 떼를 고쳐 떠나곤 했다.

남한강변에는 떼꾼들이 하룻밤 묵던 주막이 널려 있었다.물굽이와 싸우다 어둠이 내리면 강에서 가까운 주막에 떼를 매놓는다.그리고는 색시들과 어울려 거나한 술판을 벌인다.떼꾼들의 사연이 얽혀 있는 주막중 만지산에 있던 전산옥이 가장

인기가 좋았다.

'황새여울 된꼬까리에 떼지어 놓았네.

만지산 전산옥에 술상 차려놓게.'(정선 아라리중)

아직도 노래로 불려 전해오고 있다.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양수리에 다다르면 술.떡.밥과 색시를 실은 거룻배가 나타난다.그러면 거룻배를 떼 뒤에 매단채 떼위에서 색시들과 함께 2~3시간 정도 왁자하게 뛰어논다.객주와 색주가 함께

붐볐던 삼개나루.광나루에서는 투전판에 끼어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정선에서 서울까지 떼를 몰고 가면 품삯으로 3천~4천원 정도 받았다.당시 이 돈으로 서너마리의 황소를 살 수 있었으니 적은 돈이 아니었다.서울서 품삯을 받은 떼꾼들은

청량리역에서 중앙선을 타고 제천까지 온 다음 걸어서 정선땅으로 돌아갔다. 증산에서 구절리를 연결하는 정선선도 90년대 들어 탄광이 문을 닫자 이용객이 줄었다.여량역은 역사(驛舍)는 있지만 역원이 없는 무배치 간이역이다.걸어서 10분거리에 골지천과 송천이 합쳐지는 아우라지가 있다.

철도청은 계속되는 적자 누적으로 올해 1분기중 정선선을 폐쇄할 계획이었다.그러나 지역사회의 반발로 현재 타당성 검사를 하고 있다.오는 8월말 나오는 결과에 따라 어떠한 형태로든 결말이 나게 된다.

정선선은 오늘도 지역 주민의 발이 되어 증산~구절리간을 달린다.차창 밖으로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객차에서 만난 60대 할머니의 모습에서 산골마을의 훈훈한 인정을 아직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뗏목 타고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떼꾼들의 구성진 아라리는 강물속으로 흘러간지 오래다.조양강을 끼고 달리는 정선선도 뗏목이 그랬던 것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정선=김세준 기자〉

<사진설명>

객차 2량을 달고 다니는 정선선은 강원산골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미니 열차다.그러나 계속되는 적자 누적으로 폐선위기에 놓여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