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줬다 뺏었다, 헷갈려요 회장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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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의 경우에는 사장이 몇 년 주기로 바뀌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불이익을 받더라도 반전의 기회를 잡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기업에서는 사주 회장이나 사장이 장기집권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반전의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기회? 글쎄 2세로 권력이 이양되기 시기라면 혹시 생길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위 사례처럼 사주 회장이 경영권을 넘겨줄 듯 말 듯 하면, 여간 헷갈리는 일이 아니다. 도대체 어디로 줄을 서야 할 지 판단이 잘 서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은 어쩔 수 없는 것, 결국은 2세 사장에게 경영권이 넘어 가겠지만, 자칫 너무 재빨리 움직였다가 회장 눈 밖에 나는 날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다. 반면에 좌고우면하다 몸을 옮기는 시기를 놓쳐버리면, 2세 사장으로부터 철퇴를 맞을 수도 있다. ‘진즉에 내 밑에 줄을 설 것이지, 쯧!’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2세가 하나가 아닐 경우에 상황은 좀 더 복잡해진다. 2세 가운데 대체 누구 밑에 들어가는 것이 좋을 지도 함께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회장의 속이라도 뒤집어 보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의 복심이 대체 어디에 가 있는지. 하지만, 노회한 회장은 좀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쩌면 죽기 전 날에야 진정한 후계자가 누군지 알 수 있거나, 유언장이 공개되어야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날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럴 때에는 임원진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워 실시간으로 회장의 복심을 체크하는 한편, 회사 지분을 누가 많이 차지해 나가고 있는지를 분석하기 마련이다. 선거 1~2년 전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실시간으로 체크하면서, 어디에 줄을 서야 할지 고민하는 정치권 주변의 브로커들처럼 말이다.

사내정치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그 가운데 으뜸은 역시 줄서기다. 줄서기가 성행하는 이유는, 누군가 줄을 세우기 때문이다. 물론 줄서기 말고는 달리 장기가 없다보니, 그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이 줄서기의 정점에 사장님이나 회장님이 자리 잡고 있다. 사장님이나 회장님이 원하지 않더라도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음은 달리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장님과 회장님의 처신이 아주 중요한데, 이 분들의 좋은 뜻이 가끔은 비극의 사단이 되기도 한다.

위 사례의 K부사장은 고민 끝에 첫째 아들의 지분이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사장을 맡고 있는 자회사 부사장 자리를 일부러 자원해서 갔다. 그런데, 문제는 회장이 수시로 K부사장을 불러대는 것, 이럴 때마다 사장의 눈치가 보이고, 갈 수도 없고 안 갈 수도 없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둘째 아들과 큰 딸의 남편, 곧 큰 사위도 은근히 자기와 함께 일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수시로 해오고 있어서, 처신에 여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둘째 아들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다가 첫째 아들과 마주치는 바람에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K부사장으로서는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일로 평가를 받고 싶은 심정이지만, 권력 이양기다 보니 결국은 어느 시점에는 어느 한 쪽으로 올인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고민인 셈이다.

‘회장님 제발 줬다 뺏었다 하지 마세요’ ‘누구 한 사람을 확실하게 후계자로 지목하시고, 그 사람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시면 안 될까요?’ 이런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할 수 없는 현실. 그런 현실 속에서 머리가 빠개질 지경이라고.

자! 부사장이 이 정도라면, 그 아래의 상황은 어떠할 지 상상이 갈 것이다.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2세들로서는 가능한 좋은 인재를 자기 아래로 줄 세우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는 임원은 물론 직원들도 줄서기의 유혹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잘하면 단번에 ‘진골’이 되면서, 출세가도를 보장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는 언제나 받는 질문 하나는 ‘누구를 밀어야 할까요? 누구 밑에 줄을 서야 유리한가를 묻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답하곤 한다. ’갈등 없이 밀 수 있는 사람을 미세요‘ 줄을 서고도 내가 줄을 잘 선 것인지 확신이 없고, 될 가능성이 높아서 줄을 서긴 했는데, 이념이나 이상이나 영~ 안 맞는 사람 밑에 줄을 서서 갈등을 하느니, 될 가능성이 조금 낮아도 이념이나 이상이 맞는 사람과 일하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이런 설명을 꼭 덧붙이곤 한다. ’그래도 기회는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정치권의 논리가 회사에서도 그대로 통용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회사에서는 역시 후계자가 될 법한 사람에게 줄을 서야 장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회사의 경우에는 어떤 논리가 적용될 수 있을까? 착한 아들? 독한 아들? 욕심 많은 아들? 욕심 없는 아들? 그래도 장자? 아니면 똑똑한 넷째? 게을러도 하는 일마다 잘 되는, 돈이 따르는 아들? 부지런한데 하는 일마나 말아먹는, 돈이 잘 안 따르는 아들?

결국 회장의 마음이겠지만, 돈이 따르는 아들을 선택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회장님들 생각이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당연히 그쪽에 줄을 서야할 것이다. ‘똥~덩어리‘ 말고 ’돈! 덩어리‘ 말이다. 아니면, ’줄을 서려거든 최태원 회장 밑으로 서라‘고 일갈했던 손길승 SKT 명예회장에게 한 수 배우던가!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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