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몰린 시민운동 '기수' - 경실련, 김현철테이프로 도덕성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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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89년 설립 이후 시민의 입장을 대변해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최근 김현철(金賢哲)씨 테이프사건에 휘말려 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경실련은 그동안 정치.경제.사회등 모든 분야에서 건전한 대안을 제시,80년대 후반 이후 목소리가 커진 시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아왔다.이 과정에서 경실련이 활용한 무기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립성과 일체의 정치색을 배제한

도덕성.개혁을 주창하면서도 민주적인 절차와 건강한 상식에 기초함으로써 기존의'대안없는 비판'일변도였던 운동권과 분명한 경계를 지었다.

이같은 경실련의 전략은 90년대 이후 썰물처럼 퇴조하는 이념대립과 맞물려 더욱 각광받게 돼 최근엔 회원 2만5천여명,지방조직 43개의 방대한 조직으로 성장했다.'시민에 의한,시민을 위한,시민의 개혁운동'을 기치로 내걸었던 경실련은

93년부터 해외의 각종 단체와도 연계,한국의 대표적인 시민단체라는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었다.

그러나 경실련은 현 정부 출범이후 박세일(朴世逸)전 정책위원장이 청와대 요직에 중용되고 초대 사무총장 서경석(徐京錫)목사가 15대 총선에 출마하는등 핵심 인사들이 정치에 투신하면서 곱지 않은 시선도 감수해야 했다.아울러 정치적 현

안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며 새로운 압력단체로 변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하지만 최근 김현철 테이프 사건 이후 관계자의 거짓말과 절도행위가 경찰조사를 통해 드러남으로써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고 경실련의 실질적인 리더였던 유재

현(兪在賢)사무총장이 18일 사표를 내기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따라 경실련은 17일 지역조직 사무국장회의와 상임집행위 실무회의등을 잇따라 여는등 대책마련에 나섰다.경실련 내부에서도“소박하게 시작한 경실련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오만해지고 관료화됐던게 사실”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兪총장

은 고별기자회견에서“국장등의 개인적 판단에 의존한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다.논의와 합의를 통한 집단적 의사결정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재국 기자〉

<사진설명>

유재현 경실련 사무총장이 17일 사퇴의사를 밝히는 회견도중 감정을

못이겨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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