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FBI도 文人들 통제 - UCLA, 'FBI와 작가들'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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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최근 미국 UCLA대학은 2차대전후 반세기동안 미국의 작가들이 받아온 FBI의 감시와 통제를 소상히 공개한 책 ‘FBI와 작가들’(나탈리 로빈스·알빈 미첼 공저)을 출판했다.미국에서 정보자유법이 통과된 후 처음 공개된 비밀문서들을 토대로 쓴 이 책은 자유와 민주주의 신봉국인 미국에서조차 작가들이 옛소련을 연상시키는 감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적지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작가 죽이기’의 장본인은 쿨리지에서 닉슨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FBI국장을 지낸 존 후버.그가 50여년간 국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러시아혁명을 르포화한 미국 언론인 작가 존 리드(1887~1920)에서 수잔 존탁(1933~)에 이르기까지 FBI의 감시대상이 되지 않은 문인은 거의 없다고 한다.

‘세계를 뒤흔든 10일간’으로 미국문학사에 걸작을 남긴 리드는 공산주의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결국 조국을 떠나 크렘린에 묻혀야 했으며,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한 작가 잭 런던(1876~1916),대니얼 해메트(1894~1961)등도 후버의‘붉은 리스트’에 올라 곤욕을 치러야 했다.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후버는 매카시즘을 중세의 마녀사냥에 비유한‘세일럼의 마녀들’의 작가 아서 밀러를 의회의 반미활동 조사위에 세우기도 했다.

그는 헤밍웨이에 대해선‘무기여 잘있거라’에서 스페인의 좌파 공화군편에 섰다는 이유로,‘마의 산’의 작가이자 반나치스트인 토마스 만은‘모스크바의 옹호자’로 감시의 대상에 포함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후버의 애국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종·전쟁등 미국의 국익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작가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윌리엄 포크너(1897~1962),‘찰리를 위한 블루스’의 작가 제임스 볼드윈(1924~1987)은 미국의 약점인 흑백인종 차별 문제에 천착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우리는 왜 베트남에 있는가’를 쓴 노먼 메일러(1923~)등 현존 미국의 최고작가들도 반전감정을 통해 미국의 대외정책을 반대하고 나섰다는 죄목으로 도청과 감시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전후 소련문학이 공산주의에 의해 생기를 잃었다면 미국문학은 반공주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음을 이 책은 입증하고 있다.‘사회가 병들면 문학이 상처를 입는다’는 헤밍웨이의 경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최성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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