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주한 미국 商議의 이기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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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과 일본간의 무역협상은'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공방(攻防)이 치열하다.일본이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 미국이 보이는 태도가 혹독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제사회에 정평이 나 있다.70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당시

일본 총리가 대미(對美) 섬유수출을 자제해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을 때 닉슨 대통령은 당장 일본의 고립화정책으로 맞섰다.미국의 대중(對中) 공식 외교관계 수립 사실을 불과 30분 전에 사토 총리에게 통보한 것이다.

86년에는 일본으로 하여금 일본내 반도체시장의 최소한 5분의1을 미국 메이커들이 차지하도록 비밀리에 합의하게 했고,92년 재선에 필사적이었던 부시 당시 대통령은 도쿄(東京)를 방문해 일본이 미국 상품을 얼마나 팔아줄 것인지 구체적

인 목표를 제시하라고 다그쳤다.상대국에'구체적인 수치'의 제시를 요구하는 것은 미국 무역정책의 오랜 기조였고,그것은 시장개방엔 강경책이 절대 필요하다는 클린턴 정부의 입장과도 맥이 닿아 있다.

그같은'강자의 논리'는 일본과 같은 경제대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에까지 두루 통용된다.강자에게만 강한 것이 아니라 약자에게도 강해야 한다는 논리다.과거의 지배적 위치에서 몰락한 미국 기업들의 위기의식과도 연관돼 있

다.그들은 외국 시장을 무차별 잠식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수시로 정부와 의회에 대해 읍소(泣訴) 하기도 하고,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담배회사들이 좋은 예다.여러해 전부터 국내시장이 쇠퇴할 것을 예상한 담배회사들은 매년 수백만달러를 의회에 기부하는 등의 로비 끝에 금연운동을 약화시키고 담뱃값을 올려 이익을 늘리는 한편 세계 담배시장을 석권하려는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고 있다.필립 모리스사의 경우 총판매량의 60%를 해외에서 팔기 시작한 것도 서너해 전부터의 일이다.

엊그제 주한(駐韓) 미국상공회의소 대표들이 워싱턴에서“한국의 과소비억제운동이 수입규제를 초래할 수 있어 미 행정부와 의회에 시정을 요청했다”고 밝힌 것은 담배의 경우와 관련해 보면 가당찮은 이기주의다.건강에 해롭다는 담배는 무제한

팔아먹고 남의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될 과소비억제운동은 가급적 막아 또다른 이득을 챙기겠다는 발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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