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 시시각각

제자리로 돌아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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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머니의 마법이 효험을 보았던 장면이 몇 차례 있었다. 하는 일이 꼬이고 엉켜 막막해질 때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처음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자. 일이 꼬이고 엉키기 시작한 처음으로 되돌아가자. 어머니의 손을 놓쳐 헤매기 시작한 그 자리로 돌아가자. 그러면 정말 마법처럼 마음이 평안해지고 드디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 있었던 그 자리부터 차분하게 다시 시작해 보면 엉켰던 실타래도 풀리고 꼬인 가닥도 반듯하게 펴진다.

 100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다는 미증유의 금융위기와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보면서 어머니의 마법 같은 다짐을 떠올려 본다. 따뜻한 어머니 품에 안긴 듯이 아무런 걱정 없이 잘나갈 것 같았던 세계 경제는 돌연 어머니의 손을 놓쳤다. 그러곤 출구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미로에 들어섰다. 누구는 1년쯤이면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하고, 누구는 3년은 걸릴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는 이제는 영 다른 길로 들어서 출구를 찾을 수 없다고도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처음 일이 잘못되기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가 보자. 이번 금융위기의 시발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의 부실에서 비롯됐다.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집을 담보로 무리하게 돈을 빌려줬다 떼인 것이다. 여기다 금융회사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었다. 위험을 분산한다며 더 위험한 파생상품을 만들어냈다. 부실한 기초 위에 더 부실한 종이집을 켜켜이 쌓아 올린 꼴이다. 이 모든 금융 프로세스의 원천이었던 집값이 떨어지자 종이집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금융의 기본이 뭔가. 예금주나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아 생산자(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에게 대주고 이자나 수익을 얻는 것이다. 자금의 중개 기능이 금융의 기본인 것이다. 돈은 그 자체로는 돈을 벌지 못한다. 생산자가 그 돈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고 금융은 거기서 나온 수익을 나누어 가질 뿐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금융공학자가 설계한 금융상품이라도 그 원천에서 새로운 가치가 나오지 않으면 금융 스스로는 결코 이익을 낼 수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거기서 나온 파생금융상품들은 이 기본 원칙을 어겼다. 새로운 가치의 창출이 없는 곳에 돈을 대고 그것을 근거로 가공의 이익을 한껏 부풀린 것이다. 그것을 바로 거품이라고 한다.

 거품은 미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팔리지 않는 집이나 물건, 터무니없이 오른 집값, 지나치게 고평가된 주가가 모두 거품이다. 금융회사나 투자자가 여기에 돈을 댔다면 거품이 꺼지는 순간 그 돈은 부실채권이 되거나 허공으로 날아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변치 않는 경제의 기본 원칙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장기적으로 그 어떤 자산가치도 실물경제의 성장 속도 이상으로 오를 수 없다. 새로운 가치가 어느 구석에선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부동산이든 금융상품이든 그 자체로는 결코 수익을 낼 수 없다. 거품이 결국은 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위기가 언제 끝날 것인가. 그것은 거품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깨끗이 걷어내느냐에 달렸다. 그래서 진정한 가치를 창출하는 실물경제가 얼마나 빨리 되살아나느냐에 달렸다. 이제는 금융은 금융대로, 실물경제는 실물경제대로 기본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위기를 하루빨리 벗어나는 길이다. 금융이 본연의 중개 기능을 회복하고, 실물경제는 본연의 가치 창출에 나설 때가 위기가 끝나는 시점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