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고통 함께 나눠 정신건강 관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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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나라 영재집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교수가 자살을 했다.몇년 사이 이곳 학생들이 4명이나 목숨을 끊더니 이번에는 이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자신의 실력을 걱정하며 소중한 생을 포기한 것이다.

요즘 교수들과 학생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지 실상을 보는 것같아 충격이 크다.

우리의 정신도 인체의 면역력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가 가중되면 저항력이 떨어진다.교수의 자살이 가중된 스트레스의 희생같아 가슴 아프다.

대학의 전임강사로 입적이 되면 평생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옛날 생각이다.국내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외국대학에서 박사과정이나 포스트닥을 마치고 귀국해 천신만고 끝에 대학 전임강사 자리를 딴 것으로 인생의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

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대학교수도 이제는 평가를 받는다.연구업적.학생교육.사회봉사등으로 뛰어난 성과가 계속 있어야 한다.모든 것이 성과위주로 평가하다 보니 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하거나 실패율이 높은 연구는 기피할 뿐만 아니라 평가조차 받기 힘들다.

교수의 가르치는 방법도 우수해야 하고 실용적이지 못한 과목은 인기가 없다.또한 학생들이 교수강의를 평가하는데다 학생수가 적어 가정교사식 운영이 되다 보니 교수의 실력이 쉽게 노출된다.학생들과 만나 토론하고 그들을 평가해주고 지도하

다 보면 정상적인 출퇴근으로는 시간이 부족하다.

대학교수도 이제는 임기제가 된다니까 이와같은 교수 스트레스는 날로 커져만 갈 것같다.대학에서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경쟁과 가중되는 변화 스트레스,그리고 기필코 보여주어야 할 업적은 적지 않은 심리적 부담인자로 교수들의 정서적인 균

형을 무너뜨린다.인간은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지면 자기 나름대로 적응기전이 발동한다.그러나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힘과 방법은 사람마다 달라 자신을 극한 상황까지 몰고가는 사람도 많다.

특히 수재들로 구성된 연구집단은 폭넓은 사회생활을 통해 얻어지는 적응능력이 부족해 상황변화를 잘 극복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여기에 자기평가가 낮은 사람은 쉽게 절망에 빠지고 스트레스가 지속될 경우 우울증으로 연결된다.매일 겪는

불안이나 긴장이 계속되면 이를 견디기 위해 술.도박등에 의존하는데 이렇게 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우울증 초기증상은 자신감이 없고 식욕이 떨어지며 잠을 못이루기도 하는데 자신이 못느끼는 것이 특징이다.따라서 이들을 치료의 장으로

유도하는데는 주위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제 대학교수들도 지속적인 정신건강 관리가 필요하다.치열한 경쟁적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남들과 고통이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스트레스 적응기전을 스스로 개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호영〈아주대 의대학장.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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