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事大主義 심하지 않나”최일남씨등 문화계 인사 잇단 비판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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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외국 대가의 생애에 관한 자료는 넘고 처지거늘,그와 비등한 국내 인사의 것은 이가 한참 빠져 있는게 보통이다.”(최일남)“한국인 자신이 한국을 외국,특히 서양에 종속시키는 언어표현을 일삼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오세영)

우리 사회 전반에 팽배한 문화사대주의가 너무‘꼴불견’이어서 더 이상 못봐주겠다는 목소리가 문단 일각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중진작가 최일남씨는 최근 나온‘문학사상’3월호에 실린 특별기고 ‘자존과 비하를 넘어’에서“최근의 ‘유미리 현상’이 거북하다”며 문화사대주의를 꼬집기 시작했다.신인에게 주어지는 일본의 아쿠타가와상을 재일동포 2세인 유미리씨가 받은 것은 대견한 일이다.한국의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고 방송과 연극쪽에서 유씨의 작품에 대한 영상화·무대화 계획이 활발한 것도 별로 눈에 거슬릴 것이 없다.그러나 수십년 문학에만 매달리다 국내문학상을 탄 중견·중진 작가들은 조그만 기사로 처리하고 국민들이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우리 문학의 모외(慕外)지향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는게 최씨의 지적이다.

최씨는 또 우리의 단편소설 한편을 평하면서 ‘루카치’니 ‘푸코’니하며 서양문학이론가들을 들먹이거나,외국작가의 부음 소식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우리 작가들의 죽음에는 인색한 관심등 문학의 사대주의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이제 더 이상 ‘자기비하’를 하지 말자고 했다. 중진시인 오세영(서울대교수)씨는 서울대 학보‘대학신문’ 3일자에 실린 ‘아크로폴리스 유감’(본지 3월4일자 21면 참조)에서“민족을 선도하는 대학인 서울대에마저 민족의 주체성과 자존심이 있는가”고 회의적으로 묻고 있다.서울대생 스스로 집회하고 토론하는 광장을 한국의 문화나 역사와 무관하게‘아크로폴리스’로 부르는등 오씨는 서울대,나아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에 만연된 사대주의를 비판했다.

오씨는“우리 사회가 온통 가치비교의 기준을 서양에 두고 있으니 우리 고유의 개성이나 전통이 존중될리 없다”며 이제 우리 민족이 세계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문화적 주체성의 확립과 민족적 자존심의 회복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문화의 구심점인 문학,그 문인들이 세계화를 지향한다면서 몰주체적으로 돼가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나선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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