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40년대 패션과 뉴 룩展 - 2차대전 전후 패션흐름 한자리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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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끊임없이 귀청을 찢는 공습 사이렌,환한 미소로 떠났다가 전사통지서로 돌아온 사람들….전쟁은 우리에게 이런 모습들로 기억된다.

런던 시내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있는'40년대 패션과 뉴 룩'전(8월말까지)은 전쟁의 또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리.이 전시는 2차대전 전후 서구를 휩쓸었던 의상 1백여벌과 액세서리,각종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여성들의

패션속에 투영된 전쟁의 모습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요즘은 일상복이 돼버린 딱딱하게 각진 어깨선 티셔츠.더플코트등이 바로 이 시기 거리에 넘쳐나던 군복의 영향으로 시작된 유행.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군복이나 이와 유사한 유니폼을 입으면서 패션지들은'카키색에 어울리는 립스틱

색깔 고르기''방독면을 쓰고도 멋지게 보이는 법'류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의류.화장품 공장이 군수품 생산으로 돌아서고 섬유소비가 국가에 의해 제한되면서 여성들의 멋내기는 본격적인'시련기'를 맞는다.물자 부족에 따라 41년6월 영국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된 옷 배급제가 차츰 유럽전역과 미국까지 확산

된 것.이번 전시엔 낙하산이나 등화관제용 커튼등 특수소재(?)로 여성들이 직접 만든 옷들과 에르메스등 유명 패션회사들이 내놓은'힘차게 나가자'따위의 애국적인 구호가 새겨진 스카프들을 선보여 전시(戰時) 패션을 실감케 한다.한편 전쟁

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는 유일한 탈출구였던 영화는 패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조앤 크로퍼드.진저 로저스.로렌 바콜등이 영화속에 등장시킨 머리모양이나 옷차림은 동시대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다.

패션사에 일대 혁명으로 불리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의'뉴 룩(New Look),이 탄생한 것은 2차대전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47년.당시 무명 디자이너였던 디오르는 극도로 절제된 군복풍 의상에 길든 여성들에게 허리가 꼭 죄는 재

킷과 풍성하게 주름을 잡아 발목까지 내려오는 스커트를 대안으로 제시,세계를 경악케 했다.“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치마 한벌 만드는데 옷감을 20야드나 쓰다니….”전시장 한쪽 벽면엔'뉴 룩'에 쏟아진 각계각층의 비난들이 열거돼 있다.하

지만'뉴 룩'은 변화를 갈구한 이 시기 여성들의 욕구를 적확하게 간파,대성공을 거둔다.결국'뉴 룩'은 패션에 스민 전쟁의 흔적에 대한 반동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런던=신예리 기자]

<사진설명>

2차대전중 영국 디자이너협회가 선보인 실용의상.가급적 장식을

절제,내핍을 강조한 옷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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