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에너지 자원 확보, 맑은 날 우산 챙겨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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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호 02면

“정부는 공공부문의 모든 에너지 절약 조치를 앞당겨 시행하겠습니다. 7월 15일부터 승용차 홀짝제를 실시하겠습니다. …기업과 온 국민이 내 일처럼 나서 주셔야 합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 얘기가 아니다. 불과 5개월 전 한승수 국무총리가 호소한 내용이다. 당시 두바이유는 배럴당 140달러를 넘어섰다. 휘발유·경유 값은 L당 2000원을 넘어섰다. 일각에선 유가 200달러 시대를 점쳤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선 가슴만 칠 뿐이었다.

하지만 요즘 에너지 자원의 중요성과 무서움은 다시 잊혀져 가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기름값이 40달러 수준으로 추락하면서다. 내년에도 연 평균 60달러 안팎에 머물 것이란 게 연구기관들의 분석이다. 세계 5위 석유 수입국이자 7위 석유 소비국인 한국으로선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산유국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 마당에 유가 하락으로 현찰 수입이 격감한 탓이다. 급기야 에콰도르가 디폴트(국가부도) 선언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00억 달러 외채에 대한 이자를 못낼 상황에 처했다. 저유가 시대가 계속되면 제2, 제3의 에콰도르가 나올 공산이 크다. 그 바람에 국제 시장에는 채산성 떨어지는 유전 개발 지분들이 흘러 다닌다고 한다. 석유공사와 자원개발협회에 따르면 우리 기업에 매입 의사를 물어오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석유 자주개발률(석유 수입량 중 국내 업체가 개발해 들여오는 물량의 비율)이 5%에 불과한 우리로선 싼값에 유전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다. 이웃 나라 중국은 에너지 자원의 블랙홀답게 9월 이후 해외광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엑손모빌·BP 등 석유 거대기업도 몸짓을 키우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려는 전략이다.

해외유전 개발사업은 프로젝트 하나에 10억~20억 달러의 거금이 들어간다. 성공 확률도 낮고, 10년 넘게 돈이 묶인다.

민간기업이 돈키호테처럼 나서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정부 차원의 장기 전략과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은 유가 약세를 예측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망일 뿐이다. 국제 석유시장은 증시만큼이나 변화무쌍하다. 글로벌 경제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면 유가는 순식간에 급등할 수 있다. 70년대 제1차 오일쇼크 이후 반복되고 있는 현상이다.

석유 소비대국인 한국으로선 에너지 절약 기술과 대체에너지 개발 못지않게 싼값에 안정적으로 석유와 천연가스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언제까지 국제유가 움직임에 일희일비하는 ‘천수답(天水畓) 대책’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흔들리는 외환·금융시장을 생각하면 한 푼의 달러도 낭비할 수 없지만 에너지대책 역시 필수불가결하다.

산유국을 상대로 한 에너지 외교 강화와 함께 기업에 대한 세제·금융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맑은 날 우산을 챙기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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