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론>두얼굴의 '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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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봄이 오면 노란 개나리꽃이 우리를 찾아 온다.우리를 기지개 켜게 하고 움츠린 겨울의 울적함을 달래 준다.그러나 봄이 오면 부동산투기와 함께 올라만 가는 집값과 집세 뉴스도 우리를 어김없이 찾아온다.올해도 벌써 분당.일산등 신도시를

중심으로 집값과 전세값이 오르고 있다는 뉴스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경제는 어려운데 왜 집값은 올라가야 하는가.언제까지,얼마까지 땅값은 올라야 할 것인가.이미 우리나라의 땅값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비싸다고 하는데,그리고 미국과 일본은 최근에 땅값이 반 가까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땅값은

언제나 떨어질까.

땅과 물과 공기는 조물주가 창조해 우리에게 값 없이 주신 것인데 물과 공기는 마음대로 쓸 수 있으면서 땅만은 가는 곳마다 임자가 정해져 있을까.땅 때문에 인간을 죽고 죽이며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고 얼마나 많은 불평등의 속

박과 고통속에서 살아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한을 삭이며 한숨을 쉬어야 했던가.

요지의 땅 몇백평을 물려받은 사람은 자손대대로 걱정없이 잘 사는데 땅 한평 물려받지 못한 사람은 평생 일하고도 변변한 집 한채 마련 못하는 실정이다.자본주의의 꽃인 뉴욕의 맨해튼에는 고급아파트가 즐비하고 물자가 넘치는데 한구석 할

렘에는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가득하고 지하철역안의 따뜻한 곳은 거지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19세기 미국의 경제사상가 헨리 조지는 불후의 명저'진보와 빈곤'에서 경제가 진보하는 속에 빈곤이 존재하는 이유를 토지소유의 불평등에서 찾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서 토지가치세(Land Value Tax)라는 단일세 제도를 제안

했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일부 사람의 생활은 무한정으로 개선되고 편리해지지만 나머지사람들은 생계를 꾸려 나가기도 힘들게 된다고 했다.기차가 생기면 부랑자도 따라 생기고 물질적인 진보가 이루어지면 고급주택.상품으로 가득찬 창고,거대한

교회가 생기지만 빈민구호소와 감옥도 틀림없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했다.

토지가 싼 신개척지에는 거지도 없고 생활의 불평등도 별로 없었다.하지만 토지가 비싼 대도시에는 극단적인 빈곤과 사치가 동시에 존재한다.캘리포니아나 호주가 개척될때 광부가 먼저 이주하고 그 다음에 구두업자.양복업자.인쇄업자.기계기술

자들이 이주했다.그래서 도시가 생기고 토지의 사유가 이루어지고 토지가격이 미래에도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를 유발했다.토지투기는 토지가격을 올리고 토지의 독과점을 낳았다.토지의 독과점은 생산력이 증대됨에 따라 토지.노동.자본간의

합리적인 분배를 파괴하고 지대가 임금과 이자에 비해 더 큰 비중으로 증대되어 진보와 빈곤이 함께 존재한다고 했다.

헨리 조지는 이러한 분석을 근거로 진보속의 빈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토지를 사적소유에서 공동소유로 대치해야 하지만 이것은 격렬한 반대에 부닥칠 것이기 때문에 지대(地代)에 단일조세를 부과함으로써 토지소유에 따른 불로소득과 투기소득

을 방지하고 근로자와 자본가에 대한 세금을 폐지해 진보속의 빈곤을 퇴치하자고 제안했다.

올해도 땅값이 오른다는 우울한 뉴스에다 대낮에 골프장이 차고 해외관광 예약이 넘친다는 얘기를 듣고 진보와 빈곤과 토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강만수(통산부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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