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실업률 20% … “빽 없으면 백수” 그리스 젊은이들 쌓였던 불만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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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뉴스분석그리스가 통제 불가능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6일 15세 소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뒤 그리스 전역에서 청년들의 폭력 시위와 방화, 약탈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 양대 노조는 10일(현지시간) 정부의 연금 개혁과 경제 정책에 항의하는 24시간 일제 파업에 돌입했다.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총리는 “시위 정국 속에서 파업까지 벌어지면 극도의 혼란을 피할 수 없다”며 자제를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야당들도 시위를 부추기고 있어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10일 보도했다.

시위 정국은 15세 소년의 죽음으로 촉발됐지만 정부에 대한 젊은 층의 누적된 불만이 실질적인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그리스 젊은이들은 그동안 질 낮은 대학 교육과 높은 실업률에 불만을 품었으며,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낮은 임금 때문에 좌절해 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질보다는 혈연을 중시하는 정치·경제 시스템과 이를 방관하는 무능한 정부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파나요티스 아다모풀로스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아 돌아왔는데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서 한 달에 600유로(약 108만원)를 받으면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어떻게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며 분노를 토해냈다. 서유럽 국가에서 가르친 경험이 있는 교수들은 그리스 국립대학들이 부적절한 방법으로 교직원을 채용하고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며 비난에 가세하고 있다.

그리스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고등교육 예산은 학생당 연간 5000유로(약 9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5개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렇게 열악한 여건 속에서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도 ‘빽’이 없으면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게 젊은이들의 불만을 부채질하고 있다. 실제 그리스 평균 실업률이 8%도 안 되는 데 비해 대졸자들의 실업률은 20%를 웃돈다.

이 틈을 타 날뛰는 무정부주의 세력도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아테네에서 발행되는 좌파 일간지 엘레프터로티피아의 타키 미차스 논설위원은 “학생들이 시위를 벌인 뒤 집으로 돌아간 후 무정부주의자들이 거리로 나와 도심을 쓰레기장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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