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신설投信의 과열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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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설 S투신 운용팀장인 정모 부장이 1월말 갑자기 사망해 업계에 충격을 주었다.

펀드매니저는 수백억원 또는 수천억원을 만지는 화려한 직업으로 알려져 있어 그의 죽음은 더욱 충격적이다.동료중 한사람은“매일 거듭되는 운용수익률 비교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직접적 사인”이라면서“국내 투신업계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말해주

는 사건”으로 단정한다.지난해 7월부터 투신들이 신설되면서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증권사의 자(子)회사로 출발한 14개 신설 투신이 2월14일 현재 운용하는 주식형 펀드는 모두 1백38개.서울 소재 3개 투신중 가장 작은 국민투신이 운용하는 펀드 수가 1백86개임을 감안하면 아직'새발의 피'다.펀드 규모도 평균

47억원으로 한국투신의 2백6억원에 비하면 4분의1에 불과하다.

따라서 빨리 커져야 하고 커지려면 투자수익률이 좋다고 소문나야 한다.적은 돈으로 단기에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방법은 정보 위주의 단기매매뿐이라는 결론이다.그러나 정보가 늘 맞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손해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한두번

실패하면 마음이 조급해져 밤잠을 설치는 것도 예사다.

스트레스는 또 있다.신설 투신의 임원들은 대부분 모(母)회사에서 온 베테랑들이다.유감스럽게도 국내 증권업계의 베테랑은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않는다.어떤 사장은 아예 펀드매니저 옆에 앉아 사라,팔아라 지시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신설 투신의 임원은'오너'인 모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모회사의 약정실적을 올리기 위해 불필요한 매매를 하기도 한다.투신의 사장이 모회사의 상품운용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정례화된 곳도 있다.

'모회사와 동일한 건물을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이나'주문의 20% 이상을 모회사에 줄 수 없다'는 규정은 사문화된지 오래다.다른 증권사들도 비슷한 처지에 있는지라 약정 바꿔치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실제로 90% 이상의 주문이

결국 모회사에 귀속된다고 한다.투신이 운용하는 펀드를 모회사가 팔아주니 주문을 안줄 수 없는 처지라고 변명하지만 미국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업행태다.

“이런 식으로 가면 제2,제3의 정부장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자기비판도 있고,자칫 공멸(共滅)할까 두렵다는 탄식도 들린다.펀드의 설정목표.기대수익률.예상위험등을 투자자들에게 미리 공표하고 그대로 관리되는지 감시하는 시스템이 필요해 보인다.

이 판국에 영업을 개시하는 삼성모건스탠리와 쌍용템플턴이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기대가 크다. <권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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