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입고 전신에 붕대감은 소방관 아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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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는 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날 발생한 화재는 3일 동안 연소가 진행됐고, 소방재난본부는 화재진압과 실종자 수색에 총력을 다했다. 화재 발생 당일 불길은 거센 바람을 타고 진압마저 어려울 정도로 크게 번져 화재 발생 3시간36분 만에야 소방관들의 내부 진입이 가능했다.

불길이 타오르는 건물 속에서 소방관들은 부상자 5명을 구하고 7구의 사체를 찾아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동료 소방관 김진태 소방장(사진)이 큰 부상을 입은 것이다. 사상자 수색작업 도중 건물이 붕괴됐고, 김진태 소방장은 얼굴과 팔다리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서울 여의도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 현재 이곳에는 김진태 소방장이 화상 치료를 위해 입원중이다. 낮 12시, 오후 6시 하루 두 번 가능한 면회는 가족들과 동료들의 방문으로 활기를 띄지만 중환자실 밖의 표정은 어둡다. 항상 목숨을 걸어야 하는 소방관의 숙명 속에서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동료 소방관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언젠가 내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떨치기 힘들다.

김진태 소방장의 가족들 역시 슬픔에 잠겼다. 특전사를 제대하고 항상 운동을 좋아했던 씩씩한 남편은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부인 배은수씨는 “출동할 때마다 당신은 혼자 몸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남편은 화재 현장에서 눈앞에 구할 수 있는 사람의 목숨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한다. 그런 남편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했다.

9일, 오늘 면회에는 특별한 손님이 김진태 소방장을 방문했다. 열살 된 큰아들이 찾아온 것이다. 아들을 병원에 데려오기까지 엄마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요. 바쁜 교대근무 속에서도 아이들과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자주 가려고 하죠. 그런데 지금은 화상을 입었잖아요. 아빠의 다친 얼굴을 보고 아이들이 겁을 먹을까봐 두려워요. 너무 사랑하는 아이들이 아빠를 무서워하면 그 사람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하지만 오늘 아들을 데려오기로 마음먹은 배은수씨. 아내와 엄마로써 그녀는 어떤 결심을 한 것일까? “남편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어요. 전신에 붕대를 감은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겠어요. 이제 계속 부상을 치료해야 하는데 벌써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아들을 데려왔어요. 아들을 보면 희망을 가질거라 생각해요.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니까…”

중환자실에서 아들을 만난 김진태 소방장은 전신에 붕대를 감은채 아들을 맞았다. 화상의 고통 속에서도 애써 농담까지 던지며 아들에게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부여잡은 이들 부자의 손등에는 계속해서 눈물이 떨어졌다. 현재 김진태 소방관의 부인은 갑상선암 투병 중으로 내년에 수술을 받을 계획이다. 투병 중에 노모와 두 아이를 돌보는 배 씨에게도 남편의 자리는 크기만 하다.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시행하는 ‘3교대 근무방식’을 내년부터 전체 소방관들으로 확대 실시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최성룡 소방방재청장은 지난달 7일 “현재 전체 소방공무원의 74%가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고 26%만이 3교대제를 하고 있다”며 행정안전부와 협의해 내년까지 모두 3교대 근무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대형 화재참사가 일어나고 소방관들의 안타까운 희생이 나올 때마다 정부는 소방관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도 2교대의 턱없이 힘든 여건 속에 소방관들은 다른 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고 있다. 이들에게도 아내와 자식이라는 가족이 있다. 배은수 씨는 “내가 다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불속으로 들어갈 수 있겠어요. 자기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들어가는 거죠.

모든 소방관들이 똑같은 생각을 하실 거예요. 그게 이분들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조금 더 많은 소방관들을 채용해 피곤하지는 않게 일을 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아쉬운 바람을 전했다.

뉴스방송팀 강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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