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임기 1년의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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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했다.그동안 한보(韓寶)사태로 권력핵심에 쏠렸던 의혹에 대해 진솔하게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둘째아들 현철(賢哲)씨 관련 의혹설에 대해“아들의 허물이 곧 아버지의 허물”이라고 말하는 대통령의 처절

한 심경을 이해할 것만도 같다.金대통령은 현철씨를“가까이 두지 않을 것”이며“일체의 대외적 활동을 중지시키고 근신시킬 것”이라고 말했다.대통령의 어조는 침통하고 무거웠다.

그의 말처럼 평생을 민주화 투쟁에 바쳤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은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각종 여론조사는 그가 취임초에 누렸던,90%를 넘던 인기도가 10%대로 추락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그의 문민4년에 대

해'실정(失政)'이니'무능(無能)'이니'개혁의 실패'니 하는 무참할만큼의 단죄적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아마도 그 가장 큰 이유는 문민정부가 개혁의 깃발을 들며 가장 강조했던 부정부패 척결이 청와대 주변에서부터 무너져내렸고,경제상황이 전도불명의 극심한 불황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임기1년

의 대통령으로 다시 돌아간 심경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러한 대통령의 결심이 진실하며 사심없는 결정이라고 믿는다.그런 결심과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면 金대통령의 임기가 비록 1년밖에 남지 않았더라도 인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그의 인기회복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

나라의 명운이 걸려있기 때문에 더욱 믿고 싶은 것이다.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부패 척결에 가일층 노력하겠다며 제도개선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행사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보사태에 대한 의혹에서 가장 핵심은 외압(外壓)의 실체다.청와대의 핵심 측근이 스스로를'깃털'이라고 했다면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런데 그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다.물론 최종적 외압의 몸체를 밝혀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권력의 이원구조가 바로 그런 외압의 실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청와대나 여권이 한보에 관한 김현철씨 의혹설에 대해 변명하는 말은 그가 정책이나 인사에 간여했는지는 몰라도 돈을 받은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그러나 문제는 바로 정부의 정책이나 인사에 정부밖의 사적(私的)통로가 있었다는 점이다.

관계(官界)나 정계(政界)엔 이른바 '현철이 사람'이라는 말이

통용된다.개각할 때마다 장관.차관의 임명 배경을 두고 아무개 사람이라는

말이 횡행한다.6공때 TK로 행세 깨나 했던 한 고위 인사가 문민정부에서도

죽지 않고 한자리 하

게 되자 그가 바로 아무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해버리는 식이다.많은

부분이 과장되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꾀고 줄을 섰던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목줄에 대한 영향력보다 더 큰 압력은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관료들에게서 흔히“오늘 보고한 것이

하룻밤 자면 바뀌고,주말을 지나면서 바뀐다”는 말을 듣는다.외부의

사설기관에서 올린 정책판단이 작용한다는 것이다.이런 것들도 무사안일한

관료들의 자기변명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권력 이원화의 스펙트럼 속에서 사적인 압력이 가능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권력남용도 가능했다고

보인다.이런 사적인 정치방식,지난날 참모 몇명 거느리고 하던 상도동식

사설(私設)정치를 바꿔야 한다.

문민정부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두말할 것도 없이 개혁의

재추진이다.그것을 제대로 실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통치기획'을

세우고 밀어갈 세력이 있어야 한다.그래도 아직 金대통령 주변에서는

개혁을 지향하는 인사들이 남아있다고 본

다.그들을 끌어모아 새로운 개혁주류를 형성해야 한다.그리고 청와대와

정부의 공적인 기능을 회복시켜 시스템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속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그는

한때'감(感)의 정치인'이라고 불렸다.여론의 흐름을 가장 민감하게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지금처럼 제한되고 편협한

여론창구가 아니라 모든 계층,모든

국민의 마음을 읽는'민심에 대한 감(感)'을 회복하는 것이 임기 1년의

가장 중요한 출발선이 돼야 할 것이다. 김영배 (뉴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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