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holic] 대구 ‘제 구실 못하는 자전거 도로’손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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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탄 시민이 대구시 시지동의 인도 위에 설치된 자전거도로를 지나고 있다. 차량진입 방지시설과 병원 구급차가 자전거도로를 가로막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자전거도, 사람도 다니기 힘든 곳이 자전거도로입니다.”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에서 만난 김창현(39)씨는 “왜 돈을 들여 인도에 자전거도로를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휴일마다 자전거를 탄다. 집 주변 산책로인 진밭골까지 8㎞를 왕복한다. 문제는 번화가인 범물네거리 주변을 통과할 때다. 인도 위에 폭 1.2m의 자전거도로가 설치돼 있지만 사람이 붐벼 자전거를 탈 수가 없다. 김씨는 “사람들이 부딪칠까 두려워 이 구간에선 아예 자전거를 끌고 다닌다”고 말했다.

대구의 자전거도로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인도에 설치돼 자전거와 보행자와 뒤엉키는 일이 잦다. 노점상과 불법주차 차량, 차량 진입 방지시설 등 장애물도 많다.

◆자전거도로 93%가 인도 겸용=대구시내 전체 자전거도로는 523.9㎞다. 1995년부터 만들기 시작해 모두 103억2300만원이 들었다. 이 가운데 자전거 전용도로는 36㎞로 전체의 6.9%에 지나지 않는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금호강 둔치와 신천 변에 설치돼 있다.

자전거도로와 인도가 함께 있다 보니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으로 붐비는 인도에서 자전거 타기는 곡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행인도 불안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조마조마하다.

자전거 운행을 방해하는 불법주차와 갖가지 시설물도 문제다.

자전거도로는 인도 중앙에 각종 색상의 보도블록으로 표시돼 있다. 하지만 이를 따라가다 보면 곧 막히고 만다. 차량이나 노점상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 설치된 원통형 돌이나 고무봉 등 차량 진입 방지시설도 자전거 통행을 막고 있다.

매일 왕복 20㎞를 출퇴근하는 김모(45·동구 신암동)씨는 “사람과 불법주차 차량을 피해 인도와 차도를 오르내리다 보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며 “자전거 전용도로와 보관대 등 편의시설을 늘려야 이용자도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녹색소비자연대 박세진 간사는 “대구시가 나서 자전거를 마음 놓고 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전거 도시’ 만들기 나선다=대구시는 자전거 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짜기로 했다. 자전거도로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어서다. 2013년 세계에너지협의회(WEC) 총회를 앞두고 대구를 ‘저CO2 선도도시’로 만들기로 한 것도 자전거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시는 내년 3월 3억원을 들여 대구시 자전거 이용시설 기본계획 정비 용역을 발주하기로 했다.

도로를 줄여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드는 이른바 ‘도로 다이어트’를 도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과 연계해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자전거 보관대와 무료 자전거 대여소도 대폭 늘릴 방침이다.

이에 앞서 시는 내년 4월 대구지하철 29개 역사에 600대의 무료 자전거를 배치할 계획이다. 또 내년 중 자전거타기 시범학교 두 곳을 지정해 교내에 자전거 보관대를 설치하고 안전모, 자전거 정비도구도 지원키로 했다. 정병근 대구시 기후변화담당은 “자전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한 방안을 내년 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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