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금융위기 극복-北歐의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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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월 초 북유럽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90년대 초반 금융위기를 겪었던 북구 국가들의 현황을 보는 것도 이번 여행의 관심사중 하나였다.그런데 스웨덴을 비롯해 이들 국가는 한결같이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었다.90년대 초반 금융위

기가 발생한 원인은 금융의 급격한 규제완화.자유화.개방화,그리고 금융기관들의 과도한 직.간접 부동산 투자였다.

금융위기 진행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우리와 흡사한 점이 많아 여러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80년대 후반 그동안 묶였던 규제가 풀리고 해외자본유입이 증가하면서 은행의 대출과 통화공급이 급속히 늘어났다.그 당시 금융기관간 경쟁이 심해

대출심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이는 후에 부실대출 양산의 한 원인이 되었다.급속한 통화공급증가로 물가상승에 앞서 부동산과 주식가격이 뛰면서 거품경제가 발생했다.또한 과도한 자본유입에 따라 이들 국가의 화폐는 평가절상되었다.

거품경제와 화폐의 평가절상에 따라 경상수지는 크게 악화되었다.그런데 이들 국가는 경상수지 적자폭 확대에 따른 급격한 자국 화폐의 평가절하를 막고 국내 저축을 증대시키기 위해 고금리정책을 택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고금리정책은 이미 경기하강기에 들어선 경제를 더욱 위축시키면서 경기침체를 가속화시켰다.경기침체에 따라 부실대출이 크게 늘어났고 부동산 가격은 급락했다.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대출하거나 직.간접으로 부동산 투자를

했던 은행의 경영상태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금융위기에 대처해 북구 국가들이 취한 행동은 우리들이 본받을 만하다.먼저 금융위기 해결을 위한 정치권의 합의도출이다.이들 국가는 금융위기가 그것을 잉태시킨 구정권과 이를 해결해야 하는 현정권의 공동책임이라는 인식 아

래 이의 해결을 위한 정치적 합의를 보았다.

금융위기 해결을 위한 첫번째 조치는 부실은행의 장부를 완전히 공개한

것이었다.다음으로 정부는 별도의 부실채권 전담은행(Bad Bank)을 만들어

부실 대출을 떠맡고,부실 대출을 한 은행에 대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주식

소유권을 포기

하게 한뒤 자본금을 증액출자해 금융의 건실화를 도모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나 정부가

은행경영에 개입하지는 않았다.그러나 나중에 경기가 회복돼 담보가치가

복구되자 이를 팔아 기존의 정부출자금을 회수하면서 금융위기를

극복했다.

금융위기를 극복한 후 이들 금융기관은 1999년으로 예정된

유럽금융통합(EMU)이라는 새로운 금융환경에 대비하고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발빠른 대응을 하고 있다.북구 국가들은

유럽금융통합 처음 단계부터 가입할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다.그러나 북구경제권의 이점을 살리면서 언젠가는 경쟁력이

강한 독일 금융기관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인식아래 인수.합병(M&A)을 통해

대형화.자동화하면서 겸업주의를 지향,금융산업구조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이들 국가는 또한

물가안정을 위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정하고 대독(對獨)환율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90년대 초 금융위기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던 북구

국가들은 동서냉전(冷戰)이 붕괴되면서 경제적.정치적 정체성(正體性)

위기(identity crisis)도 함께 겪었다.그렇지만 이들 국가는 정치적

신중성은 유지하면서도 경제를 재빨리 서구경제권에 편입(編入)시켜 이러한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했다.

그렇다면 이 국가들이 갖고 있는 위기극복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물론 이 북구국가들은 개인당 소득이 우리의 3배가량 되는

선진국이기는 하다.그렇지만 스웨덴의 인구가 8백만명,핀란드

5백만명,덴마크 5백50만명,노르웨이 4백5

0만명등 다 합해도 우리인구의 60%도 채 안된다.그리고 이들 어느 나라의

경제규모도 우리 규모에 훨씬 못미친다.

북구의 위기극복 능력은 경제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비전을 가지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 환경변화에 남보다 한 발 앞서

능동적으로 유연하게 대처하는 데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둔 위기극복

능력이 아닐까. 金 仁 埈〈서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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