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論>97학번 새내기들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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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쪽에서는 아쉬움과 뿌듯함이 교차하는 졸업식이 연일 이어지고,또 한쪽에선 새내기들의 오리엔테이션이 활기차게 벌어진다.올해 대학에 합격한 97학번은 20세기의 거의 마지막 시기를 장식하고 4학년이면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들 세대가 새로운 대학문화를 일구는 주역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주지하다시피 옛소련과 동구권의 해체로 시작된 90년대의 한국 대학문화는 혹독한 과도기의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60년대의 민족주의 열정,70년대의 혁명적 낭

만주의 바람,그리고 광주와 함께 시작된 80년대의 전투적 상상력은 90년대라는 시대적 총구 앞에 무장해제당했다.모든 대학가는 유흥가로 변모했으며 매스미디어가 주도하는 주류 대중문화에 속절없이 편입되었다.

9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가장 심각한 위기를 서술하라면 그 첫머리엔 아마도 주류 문화의 일방 통행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아줄 비판적인 대안문화의 부재가 자리잡을 것이다.비주류 문화의 황폐화는 필연적으로 서구의 메이저 문화산업의 지배

력을 강화하는데 기여한다.여하한 로컬문화도,하위문화도 존재하지 않는 지금 여기의 문화상황에서 대학에 새삼 시선이 가는 것은 이러니 저러니해도 여기가 최후의 대안적인 문화 공동체 창출 가능성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이 배출했던 노래 문화만을 주목해보자.일본의 식민지 문화가 복귀하고 미국의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상륙하던 60년대부터 대학은 민요와 구전잡가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하나의 비판적 준거틀을 마련한다.그리고 60년대의 서구 자

유주의운동의 한 유산인 통기타문화를 독자적으로 제련시켜 70년대에 이르면 대학 뿐만 아니라 전체 대중음악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도 한다.

서구에 대한 동경과 그것에 대한 극복이 복잡하게 뒤엉켰던 이 청년문화의 강인한 파급력은 유신정권의 긴급조치에 의해 강제적으로 유폐되고 또 대학가요제 같은 상업화의 길을 걷게 되기도 하지만 제반 모순에 대한 분노의 정신은 80년대의

전투적 문화운동의 자양분이 된다.

대학의 비판적인 시선은 80년대에 이르러 하나의 불꽃을 쏘아올린다.조용필이 주류 대중음악의 영역을 확장하던 그 반대 지점에서 대학의 노래운동은 단순한 시위용 노래 보급 차원을 넘어 새로운 민중미학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창작과 배급에

있어서도 독자적인 메커니즘을 확보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이것은 그저'좋았던 시절'에 대한 하나의 추억이 아니다.명백한 것은 대안 문화의 목소리가 높았던 시대에 우리 문화 전반의 활력이 넘쳐났다는 점이다.시간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수는 없다.그러나 지나간 연대기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

적 환경과 조응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전적인 문화를 창출해내는 지혜를 짜내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문화 상품에 대한 대학 특유의 선택적 소비에서,문화의 역사적 계보학에 대한 지성적 탐구에서,그리고 나아가 싱싱한 아마추어리즘의 파괴적 창조에서 운을 떼게 될지도 모른다.

시행착오는 자유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한다.그리고 그 자유는 온전히 새내기 여러분의 미덕이 돼야 한다. 강헌<대중음악 평론가〉<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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