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비정규직 문제 강요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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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는 지난 19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23만4000여명 가운데 상시위탁집배원 등 3만2000여명을 공무원 또는 정규직화하겠다는 내용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했다. 또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은 여타 비정규직 직종에 대해서도 정부기관은 9월까지, 공기업 및 산하기관은 올해 말까지 부처별로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몇 해 동안 정부는 '효율적인 정부 구현'이라는 목표를 갖고 정부가 담당해오던 비효율적인 부문을 과감히 민영화 또는 아웃소싱했고, 고비용과 인력운영의 경직성을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 인력을 활용해 운영의 합리화를 도모했다. 이를 통해 국가 재정부담의 적정화는 물론 인력운영의 효율화를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발표는 인력운영의 합리화와 작은 정부의 구현이라는 목표에 역행하는 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비합리적인 조직운영이라고 정부 스스로 비판해왔던 공공부문에서 일관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면에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계는 해당 공공부문의 지급능력이나 직종의 성격, 예산 등을 감안해 인력운영의 합리성을 저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선별적으로 정규직화하거나 처우개선을 고려하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 또 정부가 자체적으로 대책을 마련해 비정규직의 신분안정과 처우개선을 도모하는 동시에 인력관리의 효율성과 유연성 제고방안을 강구해 자연스럽게 민간부문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정부가 노동계의 주장과 여론을 의식해 공공부문의 정규직화를 우선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정규직화의 대세를 노려 민간부문에까지 정규직화의 열풍을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민간부문의 경우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과도한 보호와 고임금으로 말미암아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다는 점을 국내외로부터 여러 차례 지적받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혹여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처방 없이 공공부문에서 정규직화를 선도해 민간부문에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유도하려거나, 그런 간접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노동계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생각한다면 이는 노동계의 기대수준만 높여 노사 간 갈등만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번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세력이 대거 원내에 진입한 상황에서 정부는 비정규직과 관련한 입법안에 대해 경영계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사내 하도급 문제와 관련해 조선업종에 대해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불법파견 관련 사내 하도급 점검지침'을 각 지방관서에 시달하는 한편, 향후에도 특별점검을 다른 업종으로 확대 실시하고 시정조치를 취할 계획에 있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비정규직 관련 입법추진, 그리고 하도급에 대한 실태조사 확대 및 시정조치를 통해 민간부문에 대해 정규직화를 압박한다면 현재와 같이 어려운 경제상황에 있어서는 결코 노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기업에 큰 부담을 주리라고 본다.

현재 높은 청년실업과 생산인력의 고령화 현상 등을 고려해 정부는 고용형태 다양화 및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책방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도하고 무분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산업현장에서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노동계의 기대감만 부풀리는 결과를 초래해 정부의 의도와 달리 노사관계의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문제는 정부 내부문제에 대한 스스로의 시정수준에 그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가 이를 통해 민간부문의 정규직화를 확대하겠다는 것으로 노동계가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