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포럼

그라운드와 관중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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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한 여권의 자세는 이중적이다. 말로는 민생과 경제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죽어버린 경기, 대량실업과 신용불안 등을 놓고 고민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은 일본식 장기불황을 부를 수 있다"는 외국 전문가의 경고가 나오고, 치솟는 기름값으로 민항기는 물까지 덜어내고 운항하는 데도 여권은 수수방관이다.

이들의 진짜 관심은 다른 데 있다. "언론.사법 개혁, 친일 청산법 처리에 당력을 기울이겠다"거나, 성장과 대치되는 의미로서의 개혁을 강조하는 데서 본심이 드러난다. 이 같은 비(非)경제 현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법개정 추진작업도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여권의 권한이다. 더구나 전에 없이 막강한 여권이다. 행정권력에 이어 오매불망하던 의회권력도 손에 넣었다. 탄핵처리나 대선자금 수사결과를 보고 "넓은 의미에서의 사법권력도 사실상 손에 넣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3권 장악인 셈이다. 그러니 평소 주장하던 각종 사회개혁 프로그램에 구미가 당기는 것 같다.

문제는 여권이 '먹고 사는 일', 즉 경제발전은 마치 호주머니 속의 물건처럼 쉽게 아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만드는 데 있다.

경제가 과연 쉬운가. 잠깐 눈을 돌려보자.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에게 물었다. "백성에게 널리 베풀고(博施於民) 대중을 어려움에서 구제하는(而能濟衆)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만일 그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어질다(仁)고 할 수 있습니까?"

스승인 공자가 평소 인을 얼마나 중요한 덕목으로 추구했는지 잘 아는 자공이다.

그래서 "백성을 잘 살게 하면 그게 인입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공자가 자공에게 가르친다. "그렇다면 어찌 인에 그치겠는가. 이는 성인의 경지다. 요순(堯舜)임금도 그러지 못할까 근심하셨다."(논어에서)

이처럼 2500년 전에도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은 모든 가치를 뛰어넘는 절대가치였다. 동시에 이 대목은 백성에게 베풀고 대중을 구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웅변한다.

지금 여권이 이 부분에 대해 과연 국민의 신뢰를 받는가. 믿음이 있다면 여권이 강력해진 지금 국민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을 크게 덜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의 현상마저 보인다.

현 여권의 중심인사 대부분은 집권 이전에는 관중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다.

정의와 민족.통일, 분배와 환경, 반전.반핵을 주장하며 그라운드에서 뛰던 당시 여권을 비난하고 옳은 소리만 주장하면 됐다. 명분만 지키면 박수와 인기가 따랐다.

하지만 현 여권의 지금 위치는 관중석이 아니다. 그라운드다. 그리고 실전을 뛰어본 지난 1년의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현 여권은 그 1년 동안 관중석으로 자리를 옮긴 구 여권을 향해 "왜 응원은 하지 않고 발목을 잡느냐"고 비난하는 것으로 부진한 실적을 덮어 왔다. 이젠 그 핑계도 댈 수 없다. 바야흐로 진지하게 먹고사는 문제에 전력을 기울여야함에도 여권은 그러지 않는다.

우리 국민이 어떤 국민인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성장을 일궈낸 구 여권에 부패와 도덕성을 문제삼아 퇴장 명령을 내린 국민이다. 40년 만에 GNP를 400배 늘린, 40년 전 1인당 100달러였던 국민소득을 100배 늘린 구 여권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는 이유로 그라운드에서 쫓아냈다. 그런 국민이 회초리를 들고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여권이 알기는 하는지 모르겠다.

김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