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코소 일본문화 <6>힘들어 죽겠어도 빛나는 중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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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호 07면

고백하련다. 옛 소개팅 남(男)의 말씀을 빌리자면, ‘남자들의 혐오대상 1순위’라는 ‘30대 빠순이’다. 지지난주엔 ‘미친 환율’을 애써 무시하며 일본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연초부터 ‘올해 무조건 해야 할 일’로 꼽아뒀던 그룹 ‘스마프(SMAP)’의 라이브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스마프, 따로 설명이 필요할까. 올해로 결성 20주년 된 일본의 ‘국민 아이돌’. 기무라 다쿠야가 속해 있는 그룹. 도쿄돔을 포함해 전국 대형 경기장을 싹쓸이하는 이들의 라이브에는 매년 100만 명의 관객이 모인다. 일본 여성들이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 한다는 공연. 일본 전역은 물론 아시아 각지에서 팬들이 모여들어 콘서트 유치가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명불허전(名不虛傳)’. 공연을 본 첫 번째 느낌이다. 3시간 반 동안 오랜만에 정신줄 놓고 맘껏 놀았다. ‘수퍼 모던 아티스틱 퍼포먼스(Super Modern Artistic Performance)’라는 공연 타이틀이 아깝지 않았다. 라이브가 끝날 무렵, 스탠드석의 팬들을 위로하러 멤버들이 이동무대를 타고 후쿠오카 돔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코앞을 지나던 나의 ‘이찌방(1번)’ 가토리 싱고군이 나를 향해(라고 믿고 싶다) 마구 손을 흔들어줄 때 생각했다. ‘아, 고환율에 지지 않아 다행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진실은 ‘그들도 늙는다’였다. 서른둘에서 서른일곱까지, 멤버 다섯 모두 남부끄럽지 않은 나이다. 와이어를 달고 돔 천장에서 내려오는 퍼포먼스에서 뒤처진 멤버가 있었고, 숨이 차 노래 한 소절을 건너뛰기도 했다. 최고 연장자이자 그룹 리더인 나카이 마사히로는 격렬한 댄스를 보여준 후 무대에 털썩 드러누워 외쳤다. “다들 즐거워? 난 힘들어 죽겠다고!!” 오빠, 저도 힘들었어요.

그러나 함께 나이 들어가는 아이돌을 갖고 있단 건 또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안타까울 정도로 땀을 쏟으면서도 ‘정말 즐거워’라는 표정으로 무대를 뛰어다니는 그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빛나는 중년이 되자” 결심했다. 너무 교훈적인 결론, 죄송하다. 암튼 그리하여 ‘팬질’은 계속된다.


‘오타쿠’라 불리는 일본의 매니어 트렌드를 일본문화 전문가인 이영희 기자가 격주로 ‘코소코소(소곤소곤)’ 짚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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