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뱉기 물의빚은 삐삐롱스타킹, 삐딱행동 숨은 뜻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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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삐삐롱스타킹의 기존질서에 대한 삐딱한 도전이 새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주말 MBC-TV'인기가요 베스트50'에 출연,카메라를 향해 침을 뱉고 서양식 욕설을 뜻하는 손동작을 해보인 삐삐롱스타킹.

이 바람에 MBC로부터 출연정지 조치를 받은 이들에게 KBS-TV'이소라의 프로포즈'제작진도“출연섭외를 취소한다”고 통보해 오는등 타방송사도 MBC의 결정을 뒤따를 태세다.음악전문 케이블 m.net에도 출연일정을 펑크낸 경험 때문

에 출연정지중인 상태.

하지만 멤버들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듯한 표정이다.본인들도 인정하듯“지상파 방송에서 적합치 못한 행동”이었음에 틀림이 없고 이로 인해 방송활동에 지장을 받게 됐지만 95년 삐삐밴드로 데뷔이후 일관해온'파격'과'문화파괴'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첫무대는 오는 28일로 예정된'신곡 시연회'.다음주로 예정된 정규앨범'원 웨이 티켓'의 수록곡들을 선보이는 무대다.공연장은 신곡 발표 무대로는 어울리지 않게도 주로 성인영화만 상영하는 서울 논현동의 강남극장.한껏'저질'스럽고

엉성하고 촌스런 모습을 연출하는 퍼포먼스 형식의 공연내용에 어울리는 공간으로 허름한 극장을 선택한 것이다.다분히 키치적인 발상이 엿보이는 이들의 의도된 촌스러움은'세련되고 우아한 것만이 고급'이란 기존관념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삐삐롱스타킹은 삐삐밴드 시절부터 줄곧 파격과 기행을 연출해왔다.초기의 보컬리스트였던 이윤정은 일부러 음치흉내를 내면서 마이크 대신 메가폰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비틀스의 루프톱 세션을 흉내낸듯 도심의 건물 옥상에서 공연을 벌이는가

하면 주말 오후 신촌네거리에서의 기습공연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방송사들이 립싱크를 배척하는 분위기로 돌아섰지만 이들은 당당히“우리는 지금 립싱크중입니다”라고 씌어진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생방송에 출연했다.

그들의 음악은 또 얼마나 파격적이었는가.출세작'딸기'는 처음부터 끝까지“딸기가 좋아”라고만 외칠뿐“이제는 뭔가 나오겠지”라고 기다리던 청자(聽者)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리며 싱겁게 끝난다.이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기발하다 못해

지나치게 가볍고 장난스럽고 때로는'작위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본인들은 범상치 못한 이 모든 행위에 대해'문화혁명(文化革命)'이란 거창한 용어를 붙인다.데뷔앨범의 제목이기도 한 이 표현에는 모든 기성의 고정관념과 엄숙주의를 깨뜨리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침뱉기'도 이같은 일련의 파격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지상파 방송은 그들에게'출연금지'란 철퇴를 내렸지만 그들의'침뱉기'는 어떤 형식으로든 계속 이어질듯하다

.시인 김수영이“시여,침을 뱉어라”고 일갈했듯. 〈예영준 기자〉

<사진설명>

거침없는 신세대 정서의 표현인가,치밀하게 계산된 눈길끌기

전략인가.TV카메라에 침뱉기등 삐삐롱스타킹의 파격과 기행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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