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럽 발목잡은 토착어-40여 소수민족 자기말 사용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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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99년 단일통화시대의 개막을 앞두고'하나의 유럽'을 외치는 유럽연합(EU)이 의외의 복병(?) 소수민 언어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인구 3억7천만명인 EU의 공식언어는 프랑스어.독일어.영어등 회원국의 공용어를 원칙으로 모두 11개.

그러나 각국의 방언은 고사하더라도 일부지역에 거주하는 5천여만명의 소수민이 40여개의 토착어를 고집,'언어 요지경'사태를 빚고 있다.

언어의 순수성을 자랑하는 프랑스에서조차 카탈루냐어.독일어.바스크어.코르시카어.브르타뉴어.네덜란드어등 지방 토착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단적으로 파리지엥(파리시민)들이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방에 가면 이 지방 주민들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곤란을 겪는 일이 허다할 정도다.

이탈리아의 경우 공용어인 이탈리아어를 빼고도 독일어.프랑스어.알바니아어.슬로베니아어.라틴어.프리우란어.옥시탄어.사르디니아어등 무려 8개 언어를 2백여만명이 사용하고 있다.

또 덴마크의 독일어권 주민이 독일에서 덴마크식 독일어를 쓰면 본토 독일인과 의사소통하는데 애를 먹기 일쑤다.큰 의미에서 독일어라 할 수 있지만 독일인.스위스인.덴마크인.벨기에인이 쓰는 독일어가 세월과 함께 각각 이질화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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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집행위원회가 최근 발표한'EU의 소수족 언어 현황'에 따르면 프랑스의 코르시카어등 22개 토착어는 사어(死語)운명에 놓여있으나 스페인어의 일종인 카탈루냐어 등은 사용인구가 더 늘어나는 추세로 나타났다.

통신수단의 발달과 세대간 언어격차로 일부 소수 언어들은 도태되고 있긴 하지만 지방자치제와 민족주의의 확산은 토착어를 오히려 발전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EU는 토착어를 공식언어로 흡수시켜 언어 수를 최소화하며 언어통합을 강구하고 있으나 소수민들의 반발과 뿌리깊은 토착어 애착에 부닥쳐 별다른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파리=고대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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