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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출근시간,등교 시간들이 한차례 지나간 동네는 간혹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들 외에는 적막하기만 했다.골목을 훑고 다니며 빈집을 찾고 있는 우풍과 용태를 주목해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우풍과 용태는 친구 집을 찾고 있는 듯이 준우야

,철민아,되는대로 이름을 불러가며 집들의 초인종을 눌러보았다.안에서 응답이 있으면 여기가 철민이 집 아닙니까 어쩌고 하며 슬그머니 물러나왔다.

그러다가 주인집과 출입문을 달리 쓰고 있는 어느 세입자의 쪽문인 철문 앞에 섰다.집 대문과 이어진 담벼락 모퉁이 근방에 그 철문이 있었다.철문 위에 붙어 있는 유두형 초인종을 용태가 눌러보았다.응답장치가 없는 그 초인종이 한참 울

렸는데도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마침 그 골목에는 사람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용태와 우풍의 시선이 급히 마주쳤다.용태가 철문을 힘껏 당겨보았으나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용태가 우풍의 허리를 껴안아 올렸다.우풍이 담벼락을 타고 넘어가 현관으로 다가갔다.현관 문도 바깥에서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문이 바깥에

서 잠겨 있다는 것은 빈집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우풍이 비트에서 가져온 작은 장도리와 찌를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자물쇠 장치를 금방 뜯어내었다.

요즈음 이렇게 엉성하게 자물쇠 장치를 해놓은 집도 있나.

보나마나 훔쳐갈 만한 귀중품 같은 것은 없는 집임에 틀림없었다.철문 바깥에서는 용태가 초조하게 서성거리며 헛기침을 뱉어 내고 있었다.

우풍이 현관을 열고 들어가 신을 신은 채 왼편에 있는 큰방으로 들어갔다.반지하에 해당하는 그 방에는 담벼락 쪽으로 난 창문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햇빛이 들어와 불을 켜지 않아도 방안의 사물들을 구분하는 데 지장은 없었다.조금 낡은

단출한 가구들이 그 방에 들어서 있는 것으로 보아 신혼부부의 방은 아닌 것 같았다.

우풍은 더블 베드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는 전화기로 다가가 송수화기를 들고 114를 눌러 이탈리아 국가코드가 몇번이며 나폴리 지역 번호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114 안내원은 조금 귀찮아하더니 39,81이라고 알려주었다.우풍은

먼저 001을 누른후 3981685346을 차례로 눌렀다.그러면서 한국과 이탈리아 시차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몰라 자못 긴장되었다.

드디어 저쪽에서 전화를 받았다.처음에는 이탈리아어가 튀어나왔으나 우풍이 더듬거리며 영어로 말하자 그쪽도 금방 영어로 바뀌었다.졸린 목소리로 보아 나폴리는 이미 자정이 넘었는지도 몰랐다.한국에서 온 민준우라는 학생이 있으면 바꿔달라

고 하니,뭐라뭐라 중얼거린 후에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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