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국어 통하는 식당’ 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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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반포4동 서래 마을의 이탈리아 식당 ‘뽀폴라리따’에서 종업원 장세나씨(右)가 능숙한 영어로 외국인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있다. 최근 서울시내에서 종업원을 위한 영어회화 책자 등을 갖춘 친(親)영어 식당이 늘고 있다. [김형수 기자]

 4일 점심 무렵 프랑스인이 많이 사는 서울 서초구 반포4동의 서래 마을. 도심 경관 관련 사업을 하는 프랑스인 파니 하울(27)이 친구와 함께 이탈리아 음식점 ‘뽀폴라리따’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

“이 수프에는 버섯이 많이 들어가나요?(Are many mushrooms in this soup?)” “토마토는 싫어하는데 토마토 뺀 샐러드를 주문할 수 있나요?(I don’t want tomato. Can I take the salad without tomato?)”

하울의 까다로운 영어 질문이 이어졌지만 종업원 장세나(26)씨는 당황하지 않았다. 능숙한 영어로 주문을 받은 후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무슨 일을 하시느냐’ ‘근처 다른 식당도 가보셨느냐’고 말을 건네기까지 했다. 하울은 “다른 한국 식당에서는 대개 손가락으로 메뉴판의 번호를 짚어 음식을 시키는데, 여기서는 원하는 대로 주문을 할 수 있어 자주 찾는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영어 구사가 능숙한 종업원을 두거나 한글과 영어 등 외국어가 병기된 메뉴판을 사용하는 식당이 늘고 있다. 늘어나는 외국인 거주자들의 식당 이용 불편을 덜고, 외국인 관광객도 끌어 모으기 위해 자치구들이 ‘친(親)영어 식당’ 보급에 나선 결과다.

뽀폴라리따는 서초구가 9월 말 관내 ‘영어 사용 가능 업소’ 26곳을 지정할 때 포함됐다. 서초구는 4월부터 호텔·식당·부동산·병원 등 7000여 곳을 대상으로 종업원들의 영어 사용 능력을 측정했다. 전직 항공사 여승무원이나 해외 거주 또는 근무 경험이 있어 영어 사용이 자유로운 종업원을 둔 업소를 추렸다. 식당 18곳, 호텔 5곳 등이 선정됐다. 이곳들에는 ‘English Spoken Here(영어 사용 가능)’라는 문구가 찍힌 안내판, 상황별 영어 문장을 담은 50쪽짜리 ‘실용 영어회화’ 책자 등이 보급됐다. 시행 두 달여, 반응은 호의적이다. 업소들은 “외국인 손님은 물론 영어 체험을 하려는 한국인 손님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구는 ‘친영어’에서 한발 더 나가 식당 이용 환경을 외국인들의 기준에도 손색없도록 끌어 올리는 음식문화 개선 사업을 지난달부터 벌이고 있다. 영어·외국어·일본어가 병기된 외국어 메뉴판을 보급하는 건 기본이다. 2000만원을 들여 외국어 메뉴판을 제작해 관내 모범음식점 100곳에 보급했다. 아직 한국 식당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개인용 ‘세팅 페이퍼’(식탁에 까는 종이)도 50만 장을 만들어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화로구이 음식점 등에 지급했다. 남는 음식물 재활용 금지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중구도 식당에서 많이 사용하는 문장 25개를 영어·일본어·중국어·러시아어로 번역한 책자 2만 부를 이달 들어 관내 3500여 식당에 보급했다.

9월 말 현재 서울시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전체 인구 1045만여 명의 2.4%인 25만여 명이다. 서울시 안준호 경쟁력정책담당관은 “친영어 식당 보급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며 “서울시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준봉·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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