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출사표 … 기업·정부·대구시 힘 합쳐 역전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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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WEC 개최지 결정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첩보전을 방불케 했다. 지난해 11월 로마 WEC 총회 기간 중 대한민국의 대구가 2013년 유치전에 뛰어든다고 공식 발표했을 때만 해도 그저 들러리로 여겨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더반)과 신재생에너지 선진국인 덴마크(코펜하겐) 두 나라의 양강 구도가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WEC 부회장인 김영훈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두 나라가 서로 치열하게 싸우다 보면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우선 WEC 중국 대표이면서 함께 부회장을 맡고 있는 장궈바오 국가에너지국 국장과의 돈독한 관계를 활용해 중국과 일본이 대구 유치를 공개 지지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마치 한·중·일 3국이 WEC 총회를 공동으로 유치한다는 인상을 준 것이다. 김 회장은 WEC 내 주요 오피니언 리더인 영국과 인도의 지지를 초반에 얻어내면서 초반 열세를 반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종 투표를 10여 일 앞둔 10월 27일 김 회장은 투표권을 가진 WEC 대표들에게 대구를 지지해 달라는 서한을 부회장 개인 명의로 발송했다. 그 결과 WEC 아프리카 지역 부회장 국가인 나이지리아가 대구를 공개 지지하겠다는 답신을 보내 왔고, 남아공에 인접한 일부 국가도 대구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최종 투표를 하루 앞둔 11월 6일에는 남미 지역을 총괄하는 노베르코 메데이레스 부회장으로부터 브라질을 비롯한 7개국이 대구를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대세를 결정지었다. 조바심을 느낀 덴마크의 아스카 부회장도 유치전에 적극 나섰다. 그러나 그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급한 김에 한 장의 슬라이드만으로 20여분간 연설을 하는 우를 범했다. 회원국 대표들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최종투표 직전 지식경제부 이재훈 차관이 등장해 이명박 대통령의 동영상 메시지를 전달했고, 김범일 대구시장이 직접 홍보전선에 뛰어들면서 회원국들의 호감을 샀다. 유치위원장을 맡은 김쌍수 한전사장은 ‘한국의 밤’ 만찬을 통해 각국 대표들에게 급격한 경제 성장과 에너지소비 증가를 보이고 있는 아시아에서 WEC 총회를 개최하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결국 한국은 11월 8일 94개 회원국 가운데 60개국이 참가한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유치에 성공했다. 김 회장은 “지지율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절반 이상을 획득하고 나머지를 두 도시가 나눈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에너지재단, 대구시, 외교부 해외공관 등 모두가 힘을 합쳐 하나의 완벽한 오케스트라를 이뤄냈다”고 유치 성공을 자평했다. 덴마크 아스카 부회장은 개최지 발표 직후 김 회장에게 “한국의 유치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김 회장은 그에게 어부지리에 대한 고사를 얘기해 줬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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