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소더비 스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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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92년초 크리스티경매장은 그해 4월에 열릴 런던경매에 영국의국보급 미술품인 한스 홀바인의.다람쥐.찌르레기와 함께 있는 여인상'이 매물로 출품된다고 밝혀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소장자는 영국의 한 왕족이며,내정가격은 2천5백만달러 였다.16세기초 독일 르네상스기의 대표적 화가인 홀바인은 일찍이 영국에 건너가 헨리 8세의 궁정화가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영국에서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다. 영국의 미술계는 일제히 그 왕족의 처사를 개탄했다.명색이 왕족이면서 어찌 귀한 예술품을 해외의 장사꾼에게 팔아먹을 수 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하지만 그 왕족에게도 변명의 여지는 있었다.영국은 그동안 수입관세를 면제하고 수출규제를 철폐하는 등미술품거래에 특혜를 베풀었으나 93년의 유럽연합(EU)출범을 계기로 그런 혜택이 없어지게 되므로 빨리 팔아치우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영국을 비롯한 벨기에.네덜란드 등 북유럽국가들은 미술품수출이비교적 자유로웠던 반면 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 등 남유럽국가들은 매우 까다로웠다.예술품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일 수도 있고,국민적 기질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어쨌거나 무거운 세금이부과되는 등 미술품 거래에 까다로운 여건이 조성되는 유럽통합은영국 등엔 불리하게 작용했지만 이탈리아 등에는 별반 영향을 미치지 못한게 사실이다. 타격받은 것은 오히려 소더비와 크리스티 등 세계적인 미술품 거래상들이었다.미술품을 마치.벽에 거는 부동산'쯤으로 생각하는미국.일본 컬렉터들의 입맛을 맞춰주기 어렵게 된 것이다.그래서종종 말썽을 일으키는게 은밀하게 흘러나와 거래 되는 미술품들이다.소장자도,구입자도 밝혀지지 않은채 거래되는게 국제 미술품경매의 관행이고 보면 미술품의 밀수.암거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게 문제다. 최근 영국의 한 기자가 끈질긴 추격끝에 밝혀낸.소더비 스캔들'은.함정 취재'라는 소더비측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미술품거래시장 전반에 걸쳐 확산될 조짐이다.91년 10월 소더비.크리스티가 첫 단독경매를 실시한 이래 매번 1백 여점이 출품돼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우리 미술품엔 그렇게 흘러나간 것들이 없는지 검증해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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