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코엘료의 음성이 내 안의 나를 마법처럼 흔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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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목소리는 우월한 계몽의식을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에는 삶을 함께 찾아가는 겸손이 따뜻하게 묻어 있다. 이 조용한 권유 덕분에 우리와의 문화적 거리감은 슬며시 사라진다.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서양인에게는 오래된 꿈이 있었다. 온갖 종류의 물질을 섞어 금을 만들고자 했던 연금술이 그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물론 근대 과학이 비과학적이며 불가능한 것이라는 판정을 이미 내렸다. 하지만 과학이냐 아니냐의 판별 여부를 떠나 금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염원만큼은 지금도 부인할 수 없는 인간적 진실이다.

그런데 그 꿈이 서양인만의 것은 아니었다. 동양에서는 도가의 연단술(鍊丹術)이 있었다. 중국의 갈홍이라는 사람이 쓴 『포박자』는 그 진실을 잘 담고 있다. 한편으로는 노장의 우주관을 펼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섭생을 통해, 특히 불로장생의 영약을 만들어 건강하게 오래 살겠다는 꿈을 갈홍은 적고 있다. 이 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코엘료의 작품은 고국인 브라질보다 유럽에서 먼저 읽히고 사랑받았다. 사진은 코엘료의 작품인 『연금술사』『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피에르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악마와 미스 프랭』

브라질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이러한 인간의 꿈을 잘 알고 있다. 그를 단번에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연금술사』를 쓸 때, 그는 이미 동서양의 이 신비주의적 전통 안에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금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내겠다는 욕심보다는, 그리고 영약을 만들어 오래 살겠다는 집착보다는 존재의 본질을 찾아 삶을 바꾸겠다는 지혜를 그는 선택한다. 우주와 조화를 이루며, 존재와 삶과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언어를 갖는 것. 여기에 바로 작가 코엘료의 비밀이 있다.

신성한 것과는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 역사 이래 물질적으로는 가장 풍요롭게 소비하고 즐기면서도 알 수 없는 영혼의 메마름을 앓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는 스스로를 찾아 ‘자아의 신화’를 살 것을 권유한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지혜가 없다면 행복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 지혜를 얻기 위해 우리는 지금의 ‘나’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존재의 본질적인 꿈을 이해하는 자아, 이러한 ‘성숙한 나’를 찾아나서는 코엘료의 언어에 독자들은 귀를 기울이고 있다.

게다가 그의 목소리는 이미 알고 있는 자의 우월한 계몽의식을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에는 함께 발견해나가는 사람의 겸손이 따듯하게 묻어 있다. 이 조용한 권유 덕분에 때로 시공간적 배경과 인물의 성격이 다른 데서 오는 우리와의 문화적 거리감이 슬며시 사라진다. 그의 글 곳곳에 나타나는 환상도 따듯한 목소리와 함께 어느덧 우리 앞에 실재하는 현실로 자리 잡는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환상성이 이토록 친근하게 우리 곁을 파고든 적은 없었다.

약 십년쯤 전에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갑자기 『연금술사』의 바람이 불었다. 낯선 외국작가의 작품이 엄청난 호응을 얻으며 서점가를 뒤덮은 것이다. 나 같은 외국인이 다 의아해할 정도로 수개월 동안 베스트셀러의 꼭대기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자국의 문학에 대해 유난히 콧대 높은 프랑스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코엘료의 언어야말로 그들에게는 친숙한 것이었다. 현대문학의 기원인 보들레르가 19세기 중반에 일찍이 말하지 않았던가. 시인이란 “꽃과 말없는 사물의 언어를 이해하는 자”이며, 그래서 “너는 나에게 진흙을 주었고, 나는 그것으로 금을 만들었다”고. 코엘료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문학의 연금술을 실천에 옮기는 것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젊어서부터 스승에게서 ‘마법’의 신비주의적 전통을 전수받았다는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세계는 따라서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곳곳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넘어가는 상징의 표식을 달고 있다. 그 ‘상징의 숲’을 가로 질러 삶의 비의와 존재의 본질을 만나는 것이다.

코엘료는 이렇게 19세기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이래의 현대문학의 전통을 우리 시대에 재현해 놓고 있다. 그것은 ‘금간 종’으로서 이 세계의 불협화음이 된 현대인으로 하여금 자아와 세계와 우주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아름다운 화음을 스스로 울리도록 이끄는 일이다.

이를 위해 코엘료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 죽음,『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에서 사랑, 『악마와 미스 프랭』에서 부와 권력, 그리고 가장 최근의 『11분』에서 성(性)과 같은 문제를 파고든다. 그것이 모두 우리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실존의 운명적 조건들이기 때문이다. 몽환적이면서도 간결하고 따듯한 코엘료 언어의 구체적 덕목이 여기서 오케스트라의 교향악처럼 울려나오고 있다. 그런데 다음 곡의 주제는 뭘까?

박철화(문학평론가)

*** 파울로 코엘료

1947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출생.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 25세 때 연극연출가 겸 TV 극작가로 활동을 시작해 대중음악의 작사·작곡가로 명성을 떨쳤다. 1987년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린 『연금술사』의 대성공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 작품은 전세계에서 2000만부 이상 판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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