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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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03면

김훈(60)씨는 20대에 시작한 신문기자 생활을 30년 가까이 한 뒤에 소설가가 됐다. 그가 쓴 기사가 그리던 독특한 글 무늬는 언론사에서 밥벌이를 하는 후배들 사이에서 요즘도 회자될 정도다. “한 개의 문장을 하나의 우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그는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쓸 때 마음속에 일어선 국악 장단에 올라타 천천히 몸으로 바닥을 밀면서 나아간다.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없으면 단 한 줄도 쓰지 못한다”고 그는 털어놨다.

울림과 떨림 -한 주를 시작하는 작은 말,

직업을 자전거 레이서라 밝힐 지경으로 작가라는 호칭이 영 불편해 보이는 그지만, 모순되게도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문단에서 가장 생산적인 글쓰기를 한 소설가로 꼽힌다. 내놓는 소설마다 문학상을 받았으니 문장을 밀고 가는 자전거 레이서의 몸은 그토록 강건하고 차진 모양이다.

『바다의 기별』은 그가 이곳저곳에 발표한 묵은 글과 책의 서문, 각종 문학상 수상 때 내놓은 소감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소설을 에세이처럼 벼리는 그이기에 책상 한구석에 수북한 지우개 똥을 치우며 그가 내쉬는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김훈씨가 쓴 장편소설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이다. 그는 처음에 “꽃은 피었다”고 썼다고 한다. 그러고 며칠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우면서 고친 것이 “꽃이 피었다”다.

조사 ‘이’와 ‘은’은 어떻게 다른가.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니,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문장과 소설은 몽매해진다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그에게 이런 문장을 가르쳐 준 것은 이순신 장군이 남긴 『난중일기』다. 패전 소식을 듣고 이순신 장군은 썼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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