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파문>경제 운용 '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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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보사태가 일파만파(一波萬波)로 번져나가자 재정경제원을 포함한 과천의 경제부처 관료들은 일손을 놓고 있다.정부가 연초에 발표했던 올해 경제운용계획 이야기는 한보의 북새통 속에 간단히증발돼 버렸다.장관이나 실무자 할 것 없이 정상 적인 정책집행이 불가능한 상태다.정책의 사령탑부터가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에 급급,사태확산의 수위에만 신경을 곤두세울 뿐 민생 경제나 긴 안목의 경제운용계획은 뒷전으로 밀어놓고 있다. 한 고위당국자는“정부가 무얼한들 국민들이 믿고 따라 오겠는가.한보사태로 인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또 한차례 치명상을 입었다”고 털어놓았다. 한보사태는 가뜩이나 심화되고 있는 불황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해에 비해 매상이 30%는 줄어든 것 같습니다.설날 쓸조기만 해도 요즘은 한두름(20마리)를 사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보통 5마리씩 사갑니다.” 남대문시장에서 제수(祭需)용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유홍재씨의 말이다. 한보사태의 여파가 연초부터 터져나온 노동계 파업과 맞물리면서서민들의 일상생활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노동계 파업과 한보사태로 인한생산차질액은 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당초 5%대로 예상됐던 올 1분기 경제성장률도 벌써부터 3~4%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관련 중소기업들은 직격탄을 얻어 맞은 셈이다.한보철강의 1차하청업체만 해도 8백개가 넘는다.그렇지 않아도 최근 실업률은 2년4개월만에 가장 높은 2.3%로 치솟았다.한보 협력업체의 연쇄부도가 이어지면 올해 실업자는 61만명에 이 를 것으로 노동부는 전망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외환사정도 한보사태 때문에 더 꼬이고 있다.1월말 현재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은 3백10억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연말이후 한달새 22억달러가 줄었고 지난해 6월말에 비해서는 무려 56억달러가 감소했다.이 와중에 한보사태로 국내은행 해외지점의 대외 신인도(信認度)가 땅에 떨어져 한은의긴급 외환지원이 불가피해졌다. 물가관리에도 큰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한보사태를 뒷막음하다보면 당장 정상적인 통화관리를 해나갈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이미 정부는 연쇄부도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뭉칫돈을 풀기로 했다. 세무조사에 위생검사까지 동원해 연초 물가는 어느정도 잡아놓았지만 앞으로 이렇게 풀릴 돈이 물가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직 꺼지지 않은 노동법 개정 논란의 불씨와 한보사태로 인해확산될 사정(司正)분위기를 감안하면 기업의 투자심리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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