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국민소환제 신중하게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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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각종 경기를 보다 보면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게임을 지휘하는 감독의 모습에 매료될 때가 많다. 지난 한.일 월드컵 때 보여준 히딩크의 멋진 모습도 여전히 눈에 선하다. 그러나 실제로 팀을 맡아 이끄는 감독이 받는 스트레스는 매우 큰 모양이다. 성적이 나쁘면 계약 기간에도 해임되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얼마 전 2002년 월드컵 이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온 코엘류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코엘류 감독의 교체를 두고 축구협회와 팬들 사이에 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 득표 적은 당선자 내내 불안

이 자리에서 축구나 감독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의 도입이다. 국민소환제는 선출된 공직자가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경우 임기 중이라도 주민들이 그 공직자에 대한 신임 여부를 투표를 통해 묻고 그 결과에 따라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다시 말하면 해고의 가능성을 상시화함으로써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제도다. 아마 이 제도가 과거에 도입됐다면 불법을 저질렀거나 여러 가지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의원들이 임기 말까지 자리를 지키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그만큼 의원들이 유권자의 요구에 좀더 민감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지난해 말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당선된 것도 바로 이 같은 소환제도의 결과다.

그러나 국민소환제의 도입은 좀더 신중하게 다뤄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의도하지 못한 부작용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국민소환제의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선거 경쟁이 만성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단순다수제 방식이다. 과반수 득표가 아니더라도 남보다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당선된다. 현재 30~40% 정도의 득표로도 당선되는 이들이 많으며 경쟁이 심하다면 20%대에서도 당선자가 나올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국민소환제가 도입된다면 당선된 국회의원은 임기 내내 해임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만약 어떤 후보가 30%의 지지로 당선됐더라도 낙선한 다른 후보들이 연합하게 된다면 70%의 반대표는 언제나 소환의 위협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선거가 끝났어도 패배한 후보들이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기보다 또 다른 대결을 준비하게 되는 상황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지역구 의원들의 경우 의정 활동에서 지역구의 이해관계에 보다 집착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이다. 지역구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관철하지 못하거나 지역 주민의 견해와 다른 입장을 갖게 되는 경우 그 의원은 소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구 의원이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국가 전체를 고려하는 결정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칠레와의 FTA 인준 과정에서 보았듯 의원들이 지역구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 지역 챙기려다 국익 무시되면 …

안 그래도 촛불집회니, 참여 민주주의의 팽창이니, 포퓰리스트적인 통치니 하는 말들이 많은 판에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게 되면 지역구나 국민 여론에 의원들이 사사건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단기적이고 시류에 편승하는 것 이상의 소신을 펼치기 어렵게 된다. 외국에서 주민소환제의 도입이 중앙 정치가 아니라 지방 수준에 집중돼 있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일단 제도가 도입되고 나면 이후에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도입할 때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 사이 불필요한 비용도 적지 않게 지불해야 한다.

코엘류를 보내고 난 뒤 생겨난 책임 논란에서 보듯 임기 중간 팀의 성적 부진이 감독의 책임만은 아닐 수 있다.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