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국민은 이데올로기 원치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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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이 25일 시카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터 오스자그(39) 의회 예산국장을 백악관 예산국(OMB) 국장으로 내정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시카고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5일 “미국인이 원하는 건 상식과 현명한 정부”라며 “국민은 이데올로기를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카고 정권인수위 사무실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바라는 건 말다툼이나 저격이 아니라 행동과 효율”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오바마는 “대선 결과는 나라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면서도 “내가 받은 53%의 지지율은 어떤 정당이 독점해선 안 된다는 지혜를 말해 주는 것인 만큼 우린 겸허한 마음으로 행정부를 출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원에서 좌파적 투표 성향을 보였던 오바마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승자독식의 욕심도 부리지 않으면서 국민을 통합하고 국력을 모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오바마에게 중요한 정책 결정을 모두 알려주고 의견을 듣고 있다. 위기 상황을 맞은 미국 정치권이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초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국무부를 맡겼다. 인사권과 대통령 독대권도 줬다. 그는 경제팀을 고르면서 좌파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배제했다. 대신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금융위기를 다룬 경험이 있는 실용주의 성향의 관료 출신을 재무장관(티머시 가이스너 뉴욕연방은행 총재)과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에 내정했다.

외교안보팀의 경우 공화당원인 로버트 게이츠 현 국방장관을 유임시키고, 민주·공화당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도성향의 제임스 존스 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령관을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발탁했다.

그런 오바마에게 공화당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와 싸웠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인사를 잘하고 있다”고 했고, 척 그래슬리 의원은 “오바마에 대해 많은 걱정을 했으나 경제팀 인선을 보고 안심했다”고 말했다. MSNBC는 “오바마를 칭찬하는 공화당 의원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측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공화당의 협력을 얻기 위해 적극 손을 내밀고 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에 따르면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인 램 이매뉴얼 하원의원이 공화당 상원의원들을 상대로 교육·건강보험·조세·에너지·국가안보 문제 등에 대한 오바마의 구상을 설명했다. 이매뉴얼은 “우리가 초당적으로 행동하면 도전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게 오바마의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한다.

부시 대통령과 오바마 사이에도 대화와 협력의 정치가 무르익고 있다. 뉴욕 타임스(NYT)는 25일 “두 지도자가 흔들리는 금융시장에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며 “두 사람이 씨티은행 구제계획을 놓고 직접 의논했으며, 보좌진을 통한 간접 대화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는 통합과 포용, 실용주의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부시와 공화당은 차기 대통령이 일할 수 있도록 초당적으로 돕는 모델을 만들고 있는 게 오늘의 미국 정치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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