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경쟁력이다] 전북 임실 '로즈피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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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 선별집하장에 웃음꽃이 만발하다. 주부사원들이 상품 공동 선별집하장에서 품질에 따라 장미를 분류하고 있다. [임실=양광삼 기자]

지난 1월 일본 도쿄 중심부의 다카시마야 백화점.

고객 사은 행사에 사용될 장미 30만송이의 납품권을 따내기 위해 일본은 물론 한국.대만 등에서 10여개 화훼업체가 몰렸다. 치열한 경쟁 끝에 납품권을 따낸 곳은 전북 임실의 ㈜로즈피아.

국내 무명업체가 해외 유수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일본 구매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당시 백화점 관계자는 박스마다 불량품 하나 없이 아름답고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로즈피아 장미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고 한다.

로즈피아는 약속대로 1주일 만에 30만송이를 차질없이 선적해 백화점 관계자에게서 "언제든 믿고 거래할 만한 업체"라는 찬사를 들었다.

◇시골 농공단지에서 세계 시장 속으로=로즈피아는 지난해 7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창립 첫 해인 2000년 실적(6억여원)보다 10배 이상 급신장한 것이다. 이 중 552만달러(약 66억원) 어치를 해외에 수출했다. 이는 국내 전체 장미 수출량(약 1040만달러)의 53%에 해당한다.

로즈피아는 매일 12만~13만송이의 장미를 생산해 도쿄.오사카 등 일본 내 124개 꽃시장과 서울 양재동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화훼 공판장으로 보낸다. 로즈피아에는 현재 전남.북 지역의 15개 화훼 영농조합(25농가)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농가가 습도.환기 등이 자동 조절되는 첨단 유리 온실에서 키운 비비안.로즈유미.핑크레이디.차밍 등 23종의 장미를 오수농공단지 내 공동작업장으로 보낸다.

이곳에서 40여명의 아주머니들이 불량품을 가려내는'속박이' 작업을 한 뒤 로즈피아 상표를 달고 시장으로 나간다. 로즈피아는 유통과정에서 '콜드체인'이라는 저온유통 시스템을 도입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냉장 차량으로 꽃을 운반하고, 온도.습도를 조절하는 예랭(豫冷) 시설에 보관함으로써 소비자 손에 들어갈 때까지 섭씨 4~5도의 저온상태에서 신선도를 유지한다.

이 덕분에 로즈피아의 장미는 평균 14일 개화 상태가 유지돼 일반 건식 상품(7~10일)보다 유통기간이 길어 경쟁력이 뛰어나다.

이홍원 관리과장은 "생산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따로 해오던 농민들이 로즈피아라는 우산 아래 모여 공동 작업.마케팅을 함으로써 원가 부담을 20~30% 줄이면서 브랜드 파워는 오히려 커졌다"고 말했다.

◇외환위기가 전화위복의 기회=로즈피아는 외환위기의 어려움을 딛고 탄생했다. 당시 국내 장미 재배 농가는 매출 감소와 자금난으로 쑥대밭이 되다시피 했다. 비닐하우스를 짓기 위해 돈을 빌려 쓴 농가가 고금리를 견디다 못해 무너졌고, 부도를 맞고 야반도주하는 농가가 줄을 이었다.

"이대로 가면 모두가 망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낀 농민들은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전남.북의 장미 재배농가 15곳이 모여 생산에서 가공.포장.유통을 총괄하는 회사를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2000년 1월 발기인 총회를 하고, 같은 해 7월 로즈피아를 설립했다.

수출은 첫 달에 3만여송이에 불과했으나 2개월 만에 100만송이, 1년(2001년 6월) 만에 1000만송이를 돌파했다.

농산물유통공사 권오훈 전북지사장은 "로즈피아의 장미는 색상이 선명하면서 향기가 뛰어나 해외에서 호평받고 있다"며 "특히 비슷한 품질의 장미 한송이 가격이 일본산은 1000원인 데 비해 로즈피아는 500~600원으로 가격 경쟁력에서도 앞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도 없지 않다. 우선 로즈피아가 성공을 거두면서 이를 벤치마킹한 화훼영농법인들이 속속 생겨나 공급 과잉으로 인한 출혈경쟁이 우려된다. 인기 품종의 경우 그루당 2000원이 넘는 로열티도 부담스럽다. 수출액의 30%에 이르는 물류비용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임실=장대석 기자<dsjang@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 로즈피아는=자본금 2억5000만원으로 25명의 조합원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사장.전무 등 임원은 주주들이 2년씩 돌아가며 맡는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 금암리 농공단지 2000여평의 부지에. 공동 선별장 330여평과 냉장 저장고 90여평, 저온 유통차량 4대, 포장기.선별기 등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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