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파워엘리트 ⑧ 상무장관 내정 리처드슨 주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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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한창 진행 중이던 올 3월. 빌 리처드슨(61·사진) 뉴멕시코 주지사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측으로부터 “은 30냥을 받고 예수를 유대인에게 넘긴 가롯 유다와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힐러리와 경쟁하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지지하자 그런 모욕적인 말이 나온 것이다. 리처드슨은 대통령에 도전했으나 1월 초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주 경선에서 4위에 머무르자 중도하차했다.

멕시코계인 그는 힐러리 부부의 사람이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집권 시절 그를 유엔 주재 미국대사와 에너지부 장관에 기용했다. 그런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그는 2002년 히스패닉(중남미계 이민자) 출신으론 처음으로 뉴멕시코 주지사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걸 아는 힐러리 측은 리처드슨의 행보에 배신감을 느꼈다.

오바마는 23일 그를 상무장관에 내정했다. 처음엔 외교를 책임지는 국무장관 후보로 검토했다가 힐러리 때문에 다른 자리를 준 것이다. 리처드슨은 외교전문 대학인 터프츠(학사·석사)를 졸업했다. 연방 하원의원 7선과 유엔대사를 하면서 외교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미국 인구의 15%에 육박하는 히스패닉의 지도자들도 그를 국무장관에 앉히려고 오바마 측에 민원을 했다. 그러나 첫 히스패닉 출신 상무장관이 나왔다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됐다.

리처드슨은 2002년 주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뒤 낙후된 뉴멕시코를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속도로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면서 투자유치·세금감면 등 친기업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또 정보고속도로 시설을 확대하고, 라스 크로세스 주변에 상업적 우주여행 센터도 만들었다. 인기가 올라간 그는 2006년 선거에서 6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과 대선 때 리처드슨에게 큰 신세를 졌다. 경선 초반 오바마는 흑인보다 인구가 많은 히스패닉 유권자 쟁탈전에서 힐러리에게 압도적으로 밀렸다. 힐러리는 히스패닉 표를 거의 싹쓸이하기 위해 리처드슨에게 손을 내밀었다. 남편 클린턴이 그를 만나 도와달라고 통사정했다. 그런데도 그는 오바마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히스패닉 층에서의 오바마 지지율은 계속 상승했다. 대선 땐 공화당 지지세가 항상 강했던 뉴멕시코가 오바마 수중으로 떨어졌고, 다른 지역의 히스패닉도 오바마에게로 쏠렸다.

리처드슨은 하루에 악수를 가장 많이 한 사람으로 기네스 북(2002년 뉴멕시코 박람회 때 8시간 동안 1만3392명과 악수)에 기록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연방하원 시절엔 외교관 신분이 아닌데도 불량국가와 협상하는 데 앞장섰다. 94년 휴전선 순찰비행 중 북한 영공으로 진입했다가 피격돼 붙잡힌 미군 헬기조종사 보비 홀 준위와 96년 간첩혐의로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혼혈 미국인 에번 헌지커를 석방하는 협상에서 수완을 발휘했다. 이후 그는 미군 유해 송환 등을 이유로 여러 번 방북해 북한에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또 옛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쿠바의 카스트로 등과도 만났다.

그는 대학 시절 야구선수였다. “프로야구팀 투수로 뽑혔으나 오른 팔을 다쳐 그만뒀다”는 말을 여러 번 했으나 2005년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났다. 그는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얘기했을 뿐 거짓말을 하려 한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리처드슨은 대학생 때 보스턴 인근을 지나다 차를 태워 달라고 한 바버라를 만나 결혼했다. 바버라는 사회봉사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자녀는 없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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