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은 거물로, 백악관은 시카고 사단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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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노스핼스티드가 한 레스토랑 벽에 그려져 있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의 대형 벽화 앞을 23일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시카고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함께 일할 백악관·정부 주요 인사들이 속속 내정되면서 그의 인사 스타일이 드러나고 있다.

내각은 독립성이 강한 거물급 인물로 주로 채우고, 백악관의 핵심 보직은 그를 추종하는 시카고 사단으로 포진시키고 있다. 각료들의 활발한 토론으로 정책 방향을 정하는 한편 백악관에서는 측근들의 보좌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23일 “미 역사상 성공한 대통령은 거물급 장관들을 내각에 임명한 뒤 이들의 상반된 의견을 조율할 줄 알았다”며 “의지가 굳고 성격이 안정적인 대통령이 능력 있는 거물급 각료들의 싸움을 통제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화려한 내각…백악관은 측근으로=오바마 내각은 화려하다. 국무장관에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내정됐다.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오바마와 치열하게 싸웠던 경쟁자다. 국방장관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유임이 유력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이라도 능력만 있으면 쓰겠다는 의지를 과시하려는 것이다. 실패한 건강보장제도를 개혁할 보건장관에는 톰 대슐 전 상원 원내총무가 내정됐다. 오바마의 정치적 스승인 그는 램 이매뉴얼 하원의원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추천했다. 재닛 나폴리타노 애리조나 주지사는 차기 정부에서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일하게 됐다. 재무장관으로 내정된 티머시 가이스너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상대적으로 약체라는 시각이 있으나 세계 금융계에서 인정하는 실력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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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백악관은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측근으로 가득하다. 오바마 대선 캠프에서 활약했던 데이비드 액설로드 수석전략가는 선임보좌관, 로버트 깁스 대변인은 백악관 대변인에 내정됐다.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 내정자인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대 교수는 ‘오바마 경제학(오바마노믹스)’의 설계자다. 이매뉴얼은 시카고 출신 하원의원으로 대선 전부터 오바마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블룸버그 통신은 “오바마가 내각에 거물을 내정했지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백악관에 포진한 시카고 사단이 오바마의 ‘변화’ 메시지를 강력하게 추진할 구심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 내각에 포진한 거물들이 상호 견제하며 한 사람의 독주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는 “힐러리가 오바마의 정책 방향에 반기를 들 경우 강력한 백악관 보좌진과 게이츠 국방장관 등이 견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각 내 토론·견제가 성공 요인=미국 역사상 성공한 대통령들은 거물들을 각료로 임명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공화당 내 라이벌인 윌리엄 수어드와 샐몬 체이스를 국무장관과 재무장관에 기용했다. 이들은 초기엔 링컨과 마찰을 빚었으나 나중에 링컨의 충실한 지지자가 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해럴드 아이크스 내무장관과 헨리 월러스 농무장관은 경제정책을 놓고 사사건건 대립했다. 그럼에도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으로 미국을 대공황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며 멸망시키려는 조지 슐츠 국무장관과 온건 노선의 캐스퍼 와인버그 국방장관 간에 갈등이 있었으나 성공적으로 대통령 업무를 수행했다.

반면 부시 대통령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간의 대립이 있었으나 내각에서는 별다른 논의 없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해 미국을 수렁에 빠뜨렸다.

린든 존슨 대통령도 내각에서 변변한 반대 없이 베트남 전쟁을 일으켜 미국에 엄청난 피해를 야기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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