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족 脫北 의문점-귀순 시기등 아리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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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북한주민의 탈북 행렬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김경호(金慶鎬)씨 일가족등 일행 17명이 대거귀순한데 이어 22일 두가족 8명이 또 귀순했다.이번에는 제3국 어선을 이용,서해상으로 귀순했다.
많은 이들은 북한판.보트피플'이 현실화하는 전조가 아닌가 하는 점에서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저녁 인천 해경부두에 도착한 이들의 행색이나 표정등으로 미뤄 이들의 귀순 경위에는 석연찮은 구석도 없지 않다.이들의 귀순이 하필 이 시점에 이뤄졌는가에 대한 의문도 그중하나다. 탈북자들이 발견될 경우 가장 빨리 움직여야 할 해군을비롯한 군당국이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사실도 의문을 더하는 구석이다. 안기부는 22일 오후 김영진.유송일씨 일가족 귀순을 전례없이 신속하게 확인했다.
.보트피플 탈북사태'로까지 의미가 부풀려지던 일가족 탈북이 이미 지난해 10월 국내 방송을 통해 수기(手記)까지 소개됐던구문(舊聞)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김영진씨의 막내아들 해광(13)군은“가족이 96년 3월24일북한을 탈출,중국에 왔다”면서 탈북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을 남겼었다.
이 글이 당시 방송을 통해 소개된 사실도 밝혀졌다.
수기의 주인공 해광군이 이번에 귀순한 김영진씨 차남과 동일인임을 확인한 안기부가 이들 가족의 움직임을 일찍부터 주시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안기부는 당초“북한주민 두가족 8명이 서해상에서 구조돼 귀순의사를 밝혀 입국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이미 가족들의 신원까지 파악하고도 마치 자신들이 이날 처음 접한 이야기인양 이들의귀순 사실을 알렸다.
사태에 접한 군당국의 움직임도 그렇다.
군당국자들은 이날 북한주민 8명이 어선을 타고 귀순해온 상황을 오후 4시30분 YTN 보도를 통해 처음 확인했다.
북한의 무동력 전마선 한척이 떠내려와도 현지 육.해군 부대에서 합참 상황실로 즉각 보고하고,합참 작전.정보참모본부로 상황을 전파하는 관례와는 딴판이다.
군은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해안경계및 상황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실제 합참 작전.정보참모본부 관계자들은 언론보도를 보고 뒤늦게 부랴부랴 상황을 체크하는 모습이었다.안기부가 군에 미리 보안을 요청한 낌새도 없다.해양경찰에는 통보하고 군에 통보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군 관계자는“제3국 어선이 우리측 영해로 들어오면 즉각 현지부대에서 상황이 보고된다”면서“안기부 발표대로 주민들이 표류하고 있었는데도 상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북한 두 일가 8명의 귀순은 틀림없다.
하지만 너무나 .절묘한' 시점에 등장한 이들의 존재는 이런저런 억측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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