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레드카펫 걸은 황태자, 가시밭길을 선택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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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16면

최순호 감독은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선수였고 지도자였다. 그런 그에게 신생팀 강원 FC의 벤치는 일생일대의 도전이다. 작은 사진은 미포조선을 2부리그 우승으로 이끈 뒤 축하를 받는 모습.

서글서글한 인상에 푸근한 미소를 지어도 어딘지 차갑게 느껴지는 40대 신사. 이젠 한 시절을 풍미했던 축구선수라기보다 교수에 가까워 보인다. 공을 아름답고 매끈하게 찼던 남자, 최순호(46)다. 말하자면 그는 1980년대의 박주영이었다. 이회택-차범근에 이어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전설적 스타였다. 그가 K-리그로 돌아왔다.

강원 FC 감독으로 K-리그 복귀한 최순호

최순호는 16일 K-리그 15번째 구단인 강원 FC의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그가 울산 현대미포조선을 2년 연속 실업 축구 내셔널리그 정상으로 이끈 바로 그날이었다. 2004년 포항 스틸러스 사령탑에서 물러난 지 4년 만이다. 2001년부터 2004년 포항 사령탑을 맡은 4년간은 결론적으로 실패였다. 내셔널리그를 지렛대 삼아 다시 기회를 잡은 최 감독은 “그때와는 다를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포항에서의 실패
포항 시절 최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한 선수는 “훈련을 하다 보면 감독님 얼굴에서 ‘저것도 못해’라는 표정을 읽을 수 있다. 그럴 땐 정말 당황스럽고 기운이 빠진다. 못해서 감독이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경기에 져도 별다른 말이 없어 처음에는 너무 놀랐다”는 말도 했다. “워낙 알아서 잘하셨던 분이라 선수들을 다그쳐 가며 ‘영차 영차’ 하는 분위기를 만들지는 못하셨던 것 같다. 선수들도 사람인지라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조금씩 나태해졌다”고 당시 포항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경기력이 나올 리 없다. 경기 내용은 답답했다. 도대체 어떤 축구를 추구하는지 방향도, 비전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서포터스까지 들고 일어나 감독 퇴진 운동을 했다. 2004년 포항은 정규리그 준우승까지 차지했지만 최순호 감독은 자리를 떠나야 했다.

축구인 최순호가 축구 인생에서 처음 경험한 좌절이었다.
 
스타는 힘들다?
요즘 세계 축구를 주름잡는 명장 중에는 무명 선수 출신이 많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첼시의 스콜라리, 인테르 밀란의 조제 무리뉴, 러시아 대표팀의 거스 히딩크 등은 모두 보잘것없는 선수 시절을 보냈다.

반면 ‘스타 출신은 좋은 감독이 되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워낙 뛰어난 기량을 타고났기 때문에 실력이 부족한 선수들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지도하지도 못한다. 늘 추앙받아서 다른 이에게 뭔가 베풀 줄 모른다. 자기 축구가 최고였다는 고집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다. 벤치의 설움을 몰라 그들을 어떻게 자극하고 또 어루만져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단맛만 알고 쓴맛을 몰라 승부사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포항 시절 ‘저런 것도 못해’라는 표정을 기억하는 선수도 있더라”는 난처한 질문에 최 감독은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직 완전히 고쳤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그렇다는 걸 알고 있는 게 예전과는 다른 점”이라고 답했다.

‘선데이 크리스천’의 변화
아내와 교제를 시작한 1985년부터 교회에 나가긴 했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최 감독은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신앙심이 깊어진 건 포항에서 물러나던 2004년부터다. 동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지만 이때부터는 술도 멀리하기 시작했다. 2005년 7월부터 100일간 태국 오지에서 축구 선교를 하는 선배를 도우며 봉사활동도 했다.
 최 감독은 “내가 받은 축복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잘 모르고 살았다. 돌이켜보면 잘못한 것 투성이였다”고 고백했다.

많은 사람이 “최 감독이 예전보다 성숙해졌다”고 평가한다. 그게 신앙 덕인지, 나이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의례적인 덕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신앙이 생긴 이후 최 감독의 일상은 축구-가족-교회 일로 단순해진 것만은 틀림없다.

2부 리그의 제왕, 절반의 성공
최 감독은 포항을 떠난 지 1년 만인 2005년 말 울산 현대미포조선 감독으로 부임했다. 2006년 최순호 감독은 내셔널리그 전기리그 4위, 후기리그 2위를 차지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2년 연속 우승컵을 품었다. 빼어난 성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최 감독의 용병술을 재평가할 기준으로 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미포조선은 최 감독이 부임하기 전부터 실업 축구의 정상권이었다. 또 최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는 K-리그 승격을 노리며 의욕적으로 투자해 왔다. 미포조선은 대전·경남·인천 등 K-리그 구단도 없는 전용 훈련장까지 보유하고 있다. K-리그 승격을 원하는 아마추어 인재들이 미포조선으로 모여들었다. 확고한 목표가 있었기에 한마음으로 뭉치기도 쉬웠다. 아직까지는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그는 고난의 가시밭길이 확실한 강원 FC를 주저 없이 선택했다. 새카만 후배인 홍명보 전 올림픽 대표팀 코치가 거절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최순호 감독은 자존심에 매달리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는 당분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구단의 주머니 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호화 군단인 포항에서도 “쓸 만한 선수가 없다. 구단 지원이 예전만 못하다”고 징징 울었던 그였다. 최 감독은 “6강 플레이오프 진입이 가능해진다면 외국인 선수 영입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어려운 상황을 즐기는 듯하다. “백지 위에 모든 것을 그려낼 수 있는 신생 구단이 더 좋다”는 것이다. 강원 FC에서 최 감독의 역량이 제대로 확인될 것이다. 선수로든 감독으로든 레드 카펫만 골라 밟아 온 그가 어려운 상황에서 출발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선수 시절 그라운드에서 수많은 골로 숱한 감독을 감동시켰다. 이제는 벤치에서 선수들을 감동시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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