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기획사 ‘갑의 횡포’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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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른바 ‘노예 계약’이라고까지 일컬어지던 연예 기획사와 연예인 간의 불공정 계약 내용이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팬텀엔터테인먼트·SM엔터테인먼트 등 10개 대형 연예기획사와 소속 연예인 354명 간의 계약 내용을 조사한 결과를 20일 발표했다. 공정위는 신인 연예인 204명의 계약서에서 사생활을 심하게 침해하는 등의 불공정 조항을 찾아내 삭제하거나 고치도록 요구했다. 나머지 150명은 스타급 또는 중견 연예인들로 이들의 계약서에는 불공정 요소가 없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팬텀엔터테인먼트의 계약서에는 ‘을(연예인)의 모든 활동은 갑(기획사)의 승인·통제 아래 하며, 갑의 의견이 우선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연예 활동과 관련해 연예인이 아무 것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무조건 기획사가 시키는 대로 따르도록 한 것이다.

‘병역·이성교제·학업·경제활동 등 사생활을 항상 사전에 기획사와 상의하고 지휘·감독에 따르도록 한다’(JYP엔터테인먼트), ‘위치를 항상 기획사에 알려야 한다’(올리브나인)는 조건도 있었다. 공정위는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했다”며 시정 조치했다.

IHQ는 신인 가수와 계약하면서 ‘기획사가 계약해지 의사를 통보하면 음반판매 수입을 연예인에게 지급할 의무를 면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음반을 만들어 놓고도 기획사가 ‘계약을 해지하자’고 한마디만 하면 그 뒤부터 판매금은 모두 기획사가 챙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수익분배 의무를 일방적으로 중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삭제를 지시했다.

SM엔터테인먼트와 비오에프는 자체 행사에 소속 연예인이 무상 출연해야 한다고 계약서에 못박았다. 공정위 김상준 시장감시국장은 “계약 기간을 3년 또는 5년, 길게는 10년까지로 해 연예인들이 오랜 기간 부당한 대우를 강요받도록 돼 있었다”고 말했다.

신인은 대체로 출연료 같은 수입의 50~60%를 가졌다. 나머지는 기획사의 몫이다. 스타 연예인에게는 수입의 전부, 때론 수입 전액에 10%를 얹어 지급했다. 기획사는 대신 스타들이 출연할 때 신인을 끼워넣어 그 출연료를 나눠 갖는 식으로 수입을 올렸다. 공정위는 기획사가 다시 불공정 계약을 하면 과징금을 물리는 등 처벌할 방침이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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