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파워엘리트 ③ 오바마의 외교팀 지휘한 40여 년 외교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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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7월 CNN방송 토론회에서 “대통령이 되면 집권 첫해에 북한·이란 등 적국 지도자들과 조건 없이 만날 용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변했다. 이 발언으로 그는 큰 곤욕을 치렀다. 민주당 경선의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오바마가 무경험과 순진함을 드러냈다”고 공격했다. 공화당 존 매케인 대통령 후보도 대선 때 같은 논리로 공세를 취했다.

당시 힐러리 측이 오바마를 비난하자 앤서니 레이크(69·사진) 조지타운 대학 교수(외교학)가 나섰다. 그는 “위대한 나라의 대통령은 어떤 누구와도 협상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며 오바마를 적극 방어했다. 레이크는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냈다. 그런 그를 힐러리 진영에선 괘씸하게 생각했다. 레이크는 당시 “나는 반힐러리가 아니고, 친오바마”라고 주장했다. “오바마가 미국을 단결시킬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를 돕는 것이지 힐러리 부부가 싫은 게 아니다”라고도 했다.

그는 오바마 캠프에서 수전 라이스 전 국무부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와 함께 300여 명의 외교 자문팀을 이끌었다. 선거기간 중 그의 팀은 매일 오전 8시 오바마에게 두 통의 e-메일을 보냈다. 세계 정세에 대한 설명과 그에 대한 예상 질문 답변을 담은 보고서였다. 1962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레이크의 노련한 보좌가 있었기에 오바마는 주요 외교 현안을 폭넓게 숙지할 수 있었다.

레이크는 2002년 시카고에 연설하러 갔다가 오바마에 대해 처음 얘기를 들었다. “당시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나이 어린 흑인 주 상원의원이 있는데 그와 대화할 생각이 있느냐는 말을 어떤 사람이 했다. 나는 ‘좋다’고 했다”는 게 레이크의 기억이다. 그러나 그는 그때 오바마를 만나지 않았다. 이후에도 전화로 대화하다 2004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오바마가 워싱턴을 찾았을 때 처음 만났다. 오바마를 만난 레이크는 “영리하고 겸손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라이스와 그레고리 크레이그 전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을 오바마에게 소개했다. 둘은 레이크와 함께 오바마 외교팀에서 중추 역할을 했다.

레이크는 하버드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민주당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베트남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으며, 69년 공화당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취임했을 땐 헨리 키신저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실에서 일했다. 그러나 이듬해 미국이 캄보디아와 전쟁을 시작하자 항의의 표시로 백악관을 그만뒀다. 그때 화가 난 닉슨은 “그 친구, 유대인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유대인 같다”고 말했다. 레이크는 유대인이다. 영국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성공회를 믿다가 3년 전 유대교로 개종했다.

그는 오바마처럼 이라크전을 처음부터 반대했다. 워싱턴의 외교 전문가 중 오바마를 가장 먼저 지지한 사람이 레이크다. 그는 중앙정보국(CIA) 국장 후보로 거론된다. 하지만 그 자리에 대해선 아픈 기억이 있다. 97년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그를 CIA 국장으로 지명했으나 그는 상원 인준의 벽을 넘지 못했다.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은 그가 안보보좌관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그를 낙마시켰다. 안보보좌관 시절엔 북핵 동결과 경수로 제공 문제를 다뤘다. 그는 첫 부인과의 사이에 세 자녀를 뒀으나 이혼했다. 그리고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유대인 줄리 카즈만과 재혼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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