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암살 날짜 맞히면 상금” 광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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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미국에서 인종 혐오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AP통신이 15일 보도했다. 오바마의 대선 승리는 흑인들의 한계를 깨뜨린 역사적 사건이지만, 동시에 유색인종에 대한 일부 백인들의 혐오증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 4일 대선 이후 미 전역에서 평소 때보다 훨씬 많은 수백여 건의 인종 혐오 범죄가 일어났다고 AP는 전했다.

대부분은 유색인종들을 욕하는 낙서 등 가벼운 범죄이지만, 뉴욕 롱아일랜드에선 히스패닉(중남미 출신 이민자) 노동자가 길거리에서 살해당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지난 8일 밤 16~17세의 백인 고교생 7명은 “멕시코인들을 때려눕히자”고 모의한 뒤 거리를 쏘다니다 우연히 만난 에콰도르 출신 36세 노동자를 칼로 찔러 죽인 것이다. 이들은 경찰에 붙잡혀 살인 및 인종 혐오 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또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생 4명은 ‘흑인들의 머리를 쏴버리자’ 등의 낙서를 공공장소에 쓰다가 검거됐다. 뉴욕에서도 20여 대의 차에 스프레이로 흑인을 욕하는 낙서가 쓰여 있는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직접적인 범죄는 아니지만, 오바마를 겨냥한 저주에 가까운 일도 벌어지고 있다. 메인주 스탠디시의 한 잡화점에는 ‘오바마 암살 날짜 맞히기 로또’를 시작한다는 광고가 붙었다. 1달러와 함께 언제 오바마가 저격될지 날짜를 적어내면 맞히는 이에게 상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광고에는 “총에 의한 저격뿐 아니라 흉기에 찔리거나 차량 폭탄 등에 의해 암살되는 것도 유효하다”는 끔찍한 말도 적혀 있다.

메인주 마운트데저트 아일랜드에서는 밧줄에 목을 맨 검은 인형이 발견됐다. 텍사스 베일러대에서도 교수형용 밧줄을 연상시키는 끈이 나무에 매여 있었으나 학교 측은 버려진 그네라고 완강히 주장했다. 뉴저지주 하드윅과 펜실베이니아주 아폴라칸에서는 오바마 지지자 집 정원에서 십자가가 불태워지는 일이 일어났다.

AP는 “백인 우월주의자 중에는 흑인 대통령의 당선은 미국이 망하는 징조이며 그가 이 나라를 망칠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9·11 테러사건 이후 이슬람교도들을 겨냥한 폭력 사태가 발생했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는 회사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개를 걷어차는 것과 같은 엉뚱한 화풀이”라고 분석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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