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는美기업들>5.기업 연구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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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첨단 기술,중요하죠.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를 제품화해 잘 팔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연구 자체를 위한 연구는하지 않습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사의 윌리엄 라두첼 부사장) 미국이 과거 일본에 당한 것은.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오히려 기초과학.첨단 기술은 일본이 미국에서 사갔다.대신 일본은 이를 이용해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물건을 적시에 만들어냄으로써 미국을 누른 것이었다.
미국도 이제는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기술의 첨단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느냐가 승부처란 것을인식했다.
미국 업계에서는.제록스사가 어떻게 개인용 컴퓨터를 처음으로 발명해 놓고도 이를 무시해버렸나(How Xerox invented,then ignored,the first personalcomputer)'란 책이 인기다.
하버드대에서 발간된 이 책은 제록스 부설 연구소가 어떻게 .
컴퓨터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이를 상업화하지 못해 선두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는지에 대한 과정과 교훈을 생생히 그리고 있다.
미국인들의 관심이 어디로 쏠리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미국 기업연구소의 역할도 이런 추세에 맞춰 달라지고 있다.방향은 간단하다..돈이 되는 연구를 하라'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IBM 부설 연구소.몇년 전부터 이곳은.노벨상을 탈만한 연구는 하지 말자'는 분위기다.노벨상 수상자를 5명이나 배출한 이곳이 이렇게 바뀐 배경은 무엇일까.극히 몇몇 사람만 필요한 기초기술보다 많은 사람에게 필 요한.돈'이될 수 있는 개발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기술로 유명해지자.IBM에 꼭 필요한 과학기술이되도록 하자'.이 연구소의 모토다.과거에는 전자(前者)가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후자(後者)쪽에 훨씬 큰 비중이 두어지고 있다. 인텔.컴팩등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휘청거리 면서 나타난변화다. 지난 91~93년 IBM 구조개편의 와중에서 6백명 이상의 연구인력이 직장을 옮겨야 했다.연구소 조직도 대폭 개편됐다..연구소도 자체적으로 돈을 벌어 운영하라'는 쪽이었다.
자바(java)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분위기는 더하다.“사업이 아이디어만으로 되나.중요한 것은 실행이다.그래서 연구원들도 현장 감각과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도록 하고 있다.”(라두첼 부사장) 그래서.현장'에 점수를 더 준다.그는“우리의 강점이 무엇인지 아는가.뛰어난 현장 기술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현장의 문제점이 무엇인지,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무시한 연구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그래서 인력 채용때.박사학위'를 가졌다고 특별히 혜택을 주지는 않는다.1백여명이 일하고 있는 선 연구소도.순수연구'보다 현실에 접목시킬 수 있는 분야의연구에 주력하고 있다.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토이 스토리'의 컴퓨터그래픽도 선 연구소의 기술을 이용한 작품이다.
.창의'를 위해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나 복장등의 격식은 없다.청바지도 좋고,한밤중에 나와 새벽에 들어가도.성과만 있으면'상관없다.
오전 11시쯤 실리콘밸리에 있는 선 연구소를 방문했는데 연구원이나 엔지니어의 방이 텅 비어 있었다.
대부분 오후에 나와 밤 늦게까지 일한다는 것.
샌호제이에 있는 연구 법인인 SISA 관계자는“실리콘밸리의 웬만한 기업은 모두 하나 이상의 연구소를 가지고 있지만 연구만을 위한 곳은 거의 없다.연구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제품화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느냐에 초점이 모아져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연구에 앞서 관련 부서에서 고객의 취향과 수요 변화를 파악한다.이것을 바탕으로 개발이 시작된다.시장에서 팔리는 물건을 만들라는것이다.”(보브 스턴 컴팩 수석부사장) 그렇다고 기초과학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것은절대 아니다.
R&D에 엄청난 돈을 쓴다.선의 경우 R&D 투자비율은 매출의 10% 정도.내셔널세미컨덕트사는 이 비율을 95년 12%에서 96년 14%로 높였다.
***R&D 매출의10%선 단지 대상과 방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연구는 대학등에 많이 의존한다.대학등에 대한 기업의 기부금이나 공동연구 지원비가 엄청나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직접 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부담이 적고 성과가높다는 것.라 두첼 부사장은“기업은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 챙기면 된다”고 본다.
연구든 개발이든 모든 것이 보다.효율적이고 실질적'인 쪽으로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마운틴뷰=김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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