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경쟁력과 상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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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피자는 동그랗다.대개 부채꼴로 8등분해 먹는다.피자를 네모로만들면 어떻게 될까.같은 재료로 직사각형의 도우(반죽)를 만들고 같은 맛을 내는 치즈와 소시지.올리브등을 얹어 정(井)자로9등분해 먹으면 모양이 다르니까 피자가 아니라 고 우길 것인가. 달력은 보통 한장에 한달을 두되 각 요일 아래 날짜를 네줄또는 다섯줄 늘어놓는다.그런데 서른한장짜리 달력을 만들면 어떨까.각 장 가운데 1에서 31까지 쓰고 밑에는 조금 작은 글씨로 1에서 12를 요일과 함께 써넣어 1월7일은 화요일,2월7일은 금요일임을 나타내면 한달에 한번 넘길 것을 매일 넘기니까달력이 아니라고 고집할 것인가.
예를 하나만 더 들어보자..2000년대 경영'의 저자 피터 마틴은 원가관리는 이제 낡은 개념이라고 주장한다.테일러의 동작연구에서 최근의 리엔지니어링까지 지난 1천년동안 사용된 경영기법은 예외없이 규모의 경제 또는 시너지란 이름아래 원가의 효율성을 따지는 것이었다.그러나 진짜 기업의 사활을 결정짓는 것은수익,곧 매출인데 원가관리에 근거한 경영이론은 이에 별 도움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분명히 새로운 이야기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다품종 소량생산에서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데 그 출발점은 풍부한 상상력이다.연매출 1백10억파운드(15조원)인 영국 GEC의 사령탑에서 지난해말 물러난 윈스탁경은“기업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적절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동의 상상력을 창출해낼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마틴이 주장하는.2000년대 경영'의 첫 원리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수익을.상상하는'것이다.소니의 모리타 회장이워크맨을 상상했을 때 상품 그 자체보다는 그로 인한 수익흐름을머리 속에 그렸고 그러한 구상은 상품의 디자인 보다 더 중요했으면 중요했지 못하지 않았다.개념.기능적으로 훌륭한 제품이 시장에서 실패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사실 원가관리란 대상이 눈에보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를 악물면 못할 것도 없다.그러나 미래의 수익은 포착하기 어려울 뿐 만 아니라 외부 여건에 따라영향을 받는다.
.고비용.저효율'로 고심하고 있는 국내 기업에는 우울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앞서 가는 국가들은 이미 다운사이징을 끝내고 업사이징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그러나.외형'이라면 국내 기업도 일가견이 있다.다만 .누군가 무 엇을 하라고 지시할 때까지 아이디어가 없는'인력으로는 경쟁에서 도무지 이길 수 없다.상상력이 풍부한 리더십이 아쉽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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