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 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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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넷스케이프 프로그램은 browser라는 방에 들어 있었다.browser는 물론 browse에서 나온 말인데,그 원뜻은 가축이 새싹을 먹는다는 의미였다.거기서 방목하다라는 말로 이어지고,더 나아가 책 같은 것을 마음내키는 대로 읽는 다는 의미로발전하였다.
상품을 사지 않고 구경만 하는 아이 쇼핑의 의미로도 쓰일 수있는 단어였다.그러니까 인터넷의 세계로 들어가 마음껏 휘젓고 다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사용자를 가리켜 browser라고 할 만하였다.그런 프로그램들 중에 넷스 케이프가 단연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가 들으면 배가 아플 일이지만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browser 방을 열자 또 다른 작은 방들이 나타났다.혁기는 그 방들 중 cache라는 방으로 찾아 들어갔다.cache는 감추어두는 곳,저장소라는 뜻이 아닌가.
“준우 이놈,내가 캐시 방을 열 줄은 몰랐을걸.” 혁기는 고소를 머금으며 훤하게 열린 방안의 무수한 품목들을 들여다보았다.인터넷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인터넷 상에 떠오르는 모든 그림 파일들은 cache 방에 저장되는데 인터넷을 종료하고 컴퓨터 전원을 꺼도 그 파일들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었다.이 사실을아는 사람은 드믄 편으로 준우도 잘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준우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이미 cache 방의 모든 파일들을 지웠어야 하지 않은가.안 그래도 5백메가급 컴퓨터 용량이 다 차가는데 말이다.
그림 파일들은 그림 파일을 열어주는 프로그램을 따로 실행시켜야 볼 수 있는 법이어서 소위 그래픽 프로그램들을 cache 방으로 일단 옮겨놓고 나서 혁기는 준우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그림들을 하나하나 점검해나갔다.준우가 인터넷을 시작 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파일들이 수백 수천개로 불어나 있지는 않았다. “엑스 제너레이션?” X-GENERATION이라는 문구와 함께 그 문구를 떠받쳐주는 로고(logo),즉 배경 그림들이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준우는 인터넷에서 엑스 제너레이션이라는 항목을 즐겨 열어보았음을 알 수 있었다.그리고 갖가지다른 항목의 로고와 그림들이 어지러이 펼쳐지는 것을 지켜보다가한순간, “억” 하고 혁기의 입에서 비명소리 같은 것이 새어나왔다.소위 인터넷 포르노 그림들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었다.아무래도 유방확대 수술을 한 것 같은 금발의 미녀가 풍만하다 못해 터질 듯한 젖가슴을 다 드러내놓고 고개를 약간 돌린 채 요염 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 그림에는 하체는 찍혀 있지 않았다.
글 조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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