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나다>'히식스'의 김홍탁씨 새밴드 퓨전음반 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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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시절 초원다방.커피 한잔을 시켜놓고….재탕.삼탕한 원두의.오묘한'맛은 신경쓸 일이 못된다.종일 죽치고 앉아 노닥거리며.룸펜의 낭만'을 즐기면 그 뿐.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장면이다.20여년전 젊은 가슴의 구석구석은 그랬다..1백억달러 수출,1인당 국민소득 1천달러'의 통치구호가 장밋빛으로 그려지던 시대였다.이런 다방에서 누구는 비틀스나 보브 딜런을,또 누구는 프로이트나 사르트 르를 꿈꿨다. 다방 전성시대였던 70년대초,다운타운엔.초원 열풍'이 거셌다.많은 다방들이 간판을 바꿔 걸기 시작했다.명동.종로.영등포일대는 물론 전국적으로 초원다방이 비온 뒤 죽순처럼 생겨났다.
연대를 조금 더 거슬러 69년,그는 그룹사운드.히식스'(He6)를 결성해.초원공화국'역모를 벌였다.이듬해.초원에서 만나서…'로 시작되는.초원의 빛'을 비롯,3곡의 초원 시리즈를 연속히트시켰다(이 가운데.초원'은 가사.뜨거운 그 입술…'부분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묶였다가 몇해전 이미자의.동백아가씨'와 함께 풀렸다).이들은 폭발하는 굉음의.5분 미학'인 록사운드가 무기였다.젊은 팬들을 업고 쿠데타에 성공,60년대 이미자.최희준의.트로트 왕조'를 무 너뜨렸다.
전자음악이 낳은.빛의 자식들'인 히식스의 수장 김홍탁씨.불세출의 일렉트릭 기타리스트로 우리 록 음악계의 백전노장,올 53세다.히피풍 장발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젊은이와 함께 했던 그는 지금 노신사풍 정장 차림이다.10대 댄스가수 들이 판치는요즘의 대중음악판에 빗대면.갈참'으로 보인다.
불구하고,음악에 대한 열정이 서태지류에 뒤질까.그는 요즘.영턱스 클럽'보다 바쁘다.원장 선생님으로 음악원 서류 결재하랴,새 밴드와 레코딩하랴,이벤트 준비하랴….
지난해 자신이 세운 국내 최대규모의 대중음악원인.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1기 음악도를 키워 내고 있다.또 국내 처음 시도되는.한국 연주인 대상'개최 준비등으로 머리가 셀 정도다.
가장 품을 많이 들이기로는 음악생활 30년에 7번째 출사표인4인조 퓨전재즈 밴드.전선특급'(電線特急)이다.쟁쟁한 악우(樂友)들을 끌어 모은 것은 지난해 가을.김기표(45.피아노).조용남(49.베이스).정희택(48.기타).이들과 함께 퓨전재즈.
라틴재즈.팝퓨전등을 담은 첫 음반을 20년만에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곡을 썼고 16인조 관현악단의 편곡으로 런던에서 녹음해왔다.이제 노랫말만 남았다.
“재즈는 대중음악의 고향이지요.7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간것도 음악적 허탈감 때문입니다.전선특급은 이제 마지막 밴드가 되겠지요.”그런데 왜 재즈일까.자신의 음악세계를 매듭짓는 시점에서 시류편승의 오해도 받는다.재즈로의 귀의가 얄 팍한 상업주의는 아니다.후학들에게 새로운 음악적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 달라는 주문이다.
“일본음악의 침투에 우리 음악계는 무방비 상태입니다.그만큼 음악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뜻이지요.”말하자면 이 작업은 한국의세계적 사운드 모색을 위한 21세기로의 다리놓기다.자신이 도맡겠다는게 아니라 첫발만 내딛고 나머지는 후학들에게 미뤄 놓는 숙제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의 활동을 컴백의 시각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작가가 10년만에 소설을 발표했다고 문단 복귀라고 말하지는 않지 않습니까?”노장은 죽지않는다 다만 때를 기다릴 뿐인가. 요즘.한국 록음악의 대부'신중현,펑크록의 살아있는 시조.산울림'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하다.하지만 자칫 록의.큰 형'들을일시 스타 만들기로 끝낼 우려도 없지 않다.이런 의미에서 김홍탁씨의 활동은 눈여겨 볼만하다.
세월은 과연 정지된 쏜살이다.날아가듯 멈춰있다.강북의 다방에서 재탕 커피 놓고 죽치며.초원의 사랑'을 듣는.룸펜들'과,강남의 눈부신 카페에서 30년 숙성의 김홍탁 퓨전재즈를 들으며 헤이즐넛 커피를 즐기는 신세대를 오버랩할 수 있으 니 말이다.
박중훈과 이소라를 꿈꾸는 요즘의 젊음을 달래줄.전선특급'의 새음반은 올 봄에 나온다.
〈박명복 기자〉***김홍탁씨 음악이력서*** 64년 록 그룹.키보이스'를 결성해.해변으로가요'발표.이 노래는 지금도 노래방 리스트에 올라있다.이 그룹은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다 나온 신중현의.애드포'보다 앞선국내 최초의 록 밴드로 기록된다.이후 69년 히식스를 이끌었다.7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오리엔탈 익스프레스'.이스트/웨스트'등 2개 밴드활동을 주도하면서 다국적 퓨전 감각을 익혔다.10년만에 돌아와 95년까지.소리기획'에서 후진 양성.
87년엔 .한국 록그룹 페스티벌'을 개최,9시간 마라톤 록 축제를 벌였다.그때.사랑과 평화'.이남이 밴드'등을 무대에 복귀시켰다.그의 이벤트 경력에는.제3세대 록 콘서트'.청소년 록 경연대회'등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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