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딴 성추문 의혹에 법조계 당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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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딴 성추문 의혹에 법조계 전체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지난해 춘천 지역의 판사와 검찰 고위간부가 성추문 의혹에 휘말려 옷을 벗은데 이어, 최근 서울시내 법원의 한 부장판사도 후배 여판사를 성희롱했다는 논란이 일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직했다.

서울 남부지법의 A 부장판사는 지난 8일 저녁 법원 근처 일식집에서 전.현직 배석판사들과 회식을 했다.

폭탄주가 여러 차례 돌았고, 술에 만취한 A 부장판사는 옆자리에 앉은 여성 배석판사의 어깨와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기혼자인 배석판사는 상관인 A 부장판사에게 "싫으니 그만두라"고 명확하게 의사표시를 했으나, A 판사의 신체접촉은 계속됐다.

A 판사는 성희롱 논란이 일자 해당 판사의 집을 찾아가 남편 등에게 사과한 뒤 16일 사표를 제출했고, 대법원은 22일 이를 수리했다.

지난해 10월에도 춘천 지역의 검찰 고위관계자가 여직원을 성희롱했다는 추문에 휘말려 대검찰청의 감찰조사를 받은 뒤 법무부에 사표를 냈다.

이 고위간부는 직원들과 등반대회를 다녀 오던 중, 만취한 상태에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여직원을 상대로 '부적절한 행동'을 한 사실이 드러나 대검 감찰부에서 감찰조사를 받았다. 그는 감찰조사에서 "친근감을 표시하느라 그랬다"는 취지로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피해 여직원은 고위간부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으나, 함께 버스를 타고 있던 직원들의 문제 제기를 하면서 감찰 조사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사와 판사간 '접대관행'도 불미스러운 일을 확대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모 지방법원의 B판사가 변호사와의 술자리에서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파문이 확산되자, 같은 달 대법원에 사표를 제출했다.

B판사는 같은 해 2월 관할지역 모 변호사와 룸살롱에서 술자리를 가진 후 속칭 '2차'를 나가 성접대를 받은 혐의에 대해 수사를 받았다.

법조인들의 성추문이 계속되자, 네티즌들은 '누가 성범죄 관련 재판을 할 수 있겠느냐'고 개탄했다.

중앙일보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린 권상순씨는 "성희롱을 재판하는 법원도 이 모양이니 누가 누구를 심판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이디 JJIN은 "법조인들도 사람이니 실수는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일반인들보다는 더 높은 윤리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높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심판하는 직업을 가진 만큼 좀 더 처신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부장판사를 지낸 한 변호사는 "폐쇄적이고 서열중심인 법원.검찰의 특성상 그동안 성추문 의혹이 있어도 쉬쉬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성추문 의혹을 무조건 덮으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법조인들의 근본적인 의식개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 관계자는 "여성 법관들에 대한 성희롱 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수기 기자

기사제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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