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大選이 정치의 전부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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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주식시장이 문민정부 수립이래 최하의 주가를 기록하며 폐장했다.그것이 한편으로는 문민 신경제의 한 단면을 나타낸 것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문민정부의 정치지수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문민정부는 지금 최하의 정치장세(場勢)를 기록하고 있는 것같다. 해를 마지막 보내면서 새벽의 기습작전으로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을 변칙처리함으로써 노동계가 총파업에 나서고 야당이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문민정부가 그들의 정치의 기초였어야 할 대화와 설득의 끈기를 상실하고 있다는데 있다. 문민정부는 기습작전의 이유를“야당의 본회의장 점거로 국회가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없는 상태에서 취한 구난조치”라고 변명했다.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설득력을 갖고 있지 못한,그냥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물론 야당이 국회의장을 감금하다시피하고 농성과 점거로 회의진행 자체를 원천봉쇄한 구태의연한 전술을 두둔하려는 생각은 전혀없다.다만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군부정권의 정책을 반대할 때 야당이 취했던 전략도 바로 그러했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단상을 점거하고 회의의 진행절차를 봉쇄하고,그럼으로써 군부정권으로 하여금 절차적인 강행을 유도함으로써 군부정권의 조급성과 단기(短氣)를 드러내게 하던 것이 바로 야당이 취했던 전술의 거의 전부였다.
거기엔 토론보다 강행이냐,아니냐를 따지는 절차의 문제만 있었고 그것이 항상 물리력에 의존하려는 습성을 가진 군사정권으로 하여금 변칙을 저지르게 함으로써 민주화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했던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또한 다른 한편으로 는 정치를 절차의 문제로 단순화시키고 정치의 무뇌화(無腦化)를 불러왔다는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민주화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은폐되었을 뿐이었다.
문민정부가 다시금 정치를 지엽적인 절차의 문제로 전락시키는 현상을 답습한 것은 모두가 내년의 대선(大選)때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욕먹을 일은 금년에 모두 해치우고 내년엔 오로지 선거에만 전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욕먹을 짓을 해치우는 과정이 너무도 좋지가 않다.
우리는 노동관계법이나 안기부법 자체에 문제점만 있는 것이 아니며 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의견이 상당히 많다고 본다.고비용구조가 추락 위기에 직면해 있는 우리경제의 경쟁 력을 저하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노조가 근로자의 단결권 보호를 넘어 마치 평생고용의 절대적 보호막처럼 오용되고 있는 것도한번은 짚어야 할 부분이었다.만약 그것이 국회에서의 원천봉쇄 때문에 토론되지 않는다면 장기간에 걸쳐 대국민토론을 부쳐보면 어땠을까.야당의 원천봉쇄전략 그 자체를 국민토론에 부쳐보면 어땠을까.안기부에 과거와 같은 수사권을 모두 회복시켜줄 수 있을만큼 정치불간여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지 따져봐야 하지 않았을까. 일본의 자민당정권은 인기없는 세금인상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총리가 직접 TV토론에 나서 국민들과 대토론을 벌인 끝에 세금을 올리고도 선거에서 이겼다.
문민정부가 왜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지 알 수 없다.공보처의 몇개 팸플릿과 광고,그리고 의견수렴이랄 것도 없는 위압적인분위기로 강행으로 몰아갔다.그 가장 큰 이유는 말썽거리는 대선전에 해치운다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대선의 투 쟁목표만 만들어냈다. 문민정부는 “대선에 이기기”위해 그린벨트를 사실상 해제하고 수도권자연보존지역을 풀었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내년의 형편없는 경제상황을 분칠하기 위해 부동산정책과 같은 극약처방도 불사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내년 대선도 또다시 정권의 도덕성과 악법 반대라는 옛날과 전혀 다를 것 없는 투쟁방식으로 전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대선이 정치의 전부가 결코 아니다.오히려 정책 선택의 중요한 계기였어야 한다.정부가 대선을 핑계로 무리수를 더이상 두지않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편집국장 대리) 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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