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장관 한 사람만 물고 늘어지는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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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내년도 예산심의가 시작된 1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는 민주당 의원과 당원 12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한 시간가량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파면” “종합부동산세 헌법재판소 결정 연기”를 외쳤다. 정세균 대표는 “강 장관이 국회에서 헌재 수석 재판관 접촉 사실을 실토했다”며 “명백한 헌재의 독립성을 훼손한 불법행위이고 장관으로서 자격이 없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의 과녁이 강 장관 한 사람에 맞춰지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 기간 중 강 장관을 비롯해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어청수 경찰청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으로 분산됐던 과녁을 하나로 정리한 것이다. 법안 처리와 예산심의가 이어지는 정기국회의 남은 기간 내내 강 장관 한 명만 물고 늘어지겠다는 전략이다.

민주당 주최로 ‘강만수 장관 파면 및 헌재 선고 연기 촉구 결의대회’가 1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렸다.정세균 대표가 의원들 앞에서 강만수 장관의 파면에 대한 당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형수 기자]


원혜영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필요한 때 필요한 사람을 바꿔 나가는 게 원칙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에 동감한다”며 “지금이 바로 필요한 사람(강 장관)을 교체할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장관이 임명될 때까지 대한민국 국회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민주당이 강 장관 경질에 매달리는 이유는 시의성과 상징성 때문이다. 지난 6일 강 장관의 ‘종부세 위헌 예고 발언’은 민주당엔 뜻하지 않았던 호재였다. 사그라들던 종부세 완화 반대 주장을 되살릴 수 있는 모티브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강 장관의 발언으로 한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당의 종부세 폐지 반대 주장에도 다시 힘이 실리게 됐다”고 말했다.

더구나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교환) 체결을 성사시킨 주역으로 알려지면서 여권 내에서 강 장관의 입지가 되살아나고 있는 상황이다.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는 “대통령이 거듭 신뢰를 표명해 온 강 장관은 MB 정부 경제 실정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강 장관의 퇴진을 강제할 뚜렷한 도구가 없다는 게 민주당의 고민이다. 해임 건의안이 국회에서 통과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150명)가 찬성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83석에 불과하다. 설령 자유선진당 등 다른 야당과 무소속 의원들이 모두 동의해도 과반엔 턱없이 부족하다(127명).

그렇다고 이 문제를 예산안 심의와 연계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자칫 “싸움만 한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진상조사위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강 장관 탄핵 등 가능한 수단을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 장관은 기획재정위에 출석해 2009년 예산안을 설명했다. 민주당은 고민 끝에 설명만 듣고 질의응답은 거부하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임장혁 기자,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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