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대중문화키워드>4.애인

.애인'은 이제 어떤 경우.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가리킨다. 낡은 시집의 책갈피 속에 잠들어 있던 말이 불쑥 나타나이처럼 왜곡된데는 대중매체,특히 공중파방송에 몰아닥친 불륜소재드라마의 영향이 컸다.그 한가운데에 MBC 드라마.애인'(9월2일~10월22일)이 있고 KBS 아침드라마.유혹' 과 MBC의 .길위의 여자'가 가세했다.
.애인만들기'바람은 이미 지난해 미국영화 .매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 싹을 보였다.중년의 한때 외도가 생애에 걸친 배우자와의 삶을 껍데기로 만들기에 족하도록 묘사돼 있다.
뒤이은 한국영화.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와.지독한 사랑'은기혼남녀의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부정적 시각을 지키고 있고 어디까지나 극장이나 비디오 속의 일이었다는 점에서 큰 문제는 아니었다. 드라마.애인'이 던진 파문은 달랐다.대부분의 불륜소재영상물이 육체적이고 부정적 시각을 띠었던 반면.애인'은 정신적이고 긍정적이며 여성중심적 시각으로 무장했다.감각적인 화면과 압축된 심리묘사등 차별화된 요소는 진정한 사랑과 가정 사이에서갈등하는 심각한 주제에 몰입토록 하는 당의정이었다.
더군다나 현대생활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TV를 통해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은 급속도로 사회적 논란거리가 됐다.드라마 방영기간중 실시한 한 여론조사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8백50명의 중년주부들중 60%가 남자친구가 필요하다고 답한 결 과를 제시한다. .유혹'과.길위의 여자'는 어떤가..유혹'은 옛 애인이었던 중년 남녀가 가정을 뒤로 하고 재결합해가는 이야기며.길위의여자'는 친구에게 남편을 빼앗긴 아내가 또 다른 여자의 남편과재혼하는 겹불륜구조를 보이고 있다.방송위원회는 드 디어.애인'을 놓고.드라마의 소재및 사회적 영향'이란 토론회를 열기에 이르렀다. 가정의 가치를 위협한다는 비판에 대해 제작진은.세태의반영'이라 응수했다.이 토론회는 매체의 홍수 속에서 전통적 가치가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가 고민하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유용했다. 하지만 애인열풍은 계속되고 있다..유혹'과.길 위의 여자'는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다.
새삼 이 프로들에 윤리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대답은 자명하다.
문제는 불륜이 새로운 소재가 아닌데 하필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애인'이 애인열풍으로 비화한데는 우리 사회와 가정에 그만큼 허한 구석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
성개방과 개인주의화는 점점 가정의 울타리를 위협하고 있다.애인열풍이 거셀수록 가정을 지키자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는 요즘이다. 〈이규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