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를가다>3.꿈틀대는 새 정치흐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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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옛소련이 빠져나간 중앙아시아에는 새로운 정치의 흐름이 꿈틀거린다.느닷없이 닥쳐온 힘의 공백을 장악하려는 시도들이 복잡한 지정학을 만들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자기인식도 역동성을 강화시킨다.먼저 러시아를 향한 정치 기상도를 보자.카자흐스탄은 러시아를 맏형으로 모시면서 지역맹주를 자처하고 있다.과거와 같은 통합은 원치 않지만 러시아와의 유대강화에 가장 힘을 쏟는다.내란에 휩싸여 있는 타지키스탄같은 나라도 러시아의 우산아래 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 정치기조는.탈(脫)러시아'다.독립국가연합(CIS)에 속한 나라중 러시아에 가장 비판적이다.일찌감치 독자화폐를 도입하고 거리의 모든 간판들을 자국어로 바꾸고 통과승객에게 러시아비자를 인정하지도 않는다.이 지역 맹 주를 자처하는 카자흐스탄과도 어깨겨룸을 하려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영세중립을 선언했다.지난해 유엔동의를 받았다는 것이 우즈베키스탄주재 투르크메니스탄 대사의 말이다.CIS를인정하지만 러시아의 영향력을 중립의 범위에서만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다. 소련이라는 유일한 정치색만이 있던 이곳에 5국3색이 나타난 것이다.거기에 미국과 회교세력은 정치색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초강대국 미국의 영향력은 이미 깊숙하다.
미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카자흐스탄에 가장 먼저 대사를 보냄으로써 정치적 신호를 보냈다.사우디아라비아를 잃었을 경우 대체할 수 있는 잠재적 석유부국의 의미도 있다.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미국에 두번 초대돼 3억달러 규모의 지원을 약속받 은 것은 1천8백기에 달한 핵무기 폐기의 대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같은전략적 중요성 때문이기도 하다.미국은 또 우즈베키스탄을 인권탄압국으로 비난하면서도 카리모프 대통령을 초대해 개혁지원및 화폐안정기금으로 4억3천만달러를 지원했다 .
미국이 이처럼 상층부를 지배한다면 회교세력은 기층을 파고들고있다.터키는.터키어'쓴다는 점을 지렛대로 광범위한 작전을 편다.건설등을 중심으로 한 경제관계를 통해 별다른 저항감없이 옛소련 70년동안 못다했던 문화적 유대를 강화하는데 열심이다.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할 것 없이 터키 외무장관이나 총리의 발걸음이 잦고 터키 기업도 많이 들어와 있을 뿐아니라 터키는 출혈을 감수하면서 중앙아시아로 TV를 송출하고 있다.
이란은 아직 외무장관이 공식 방문하는 정도로 조심스런 행보를한다. 이 지역이 회교권임에도 불구하고 70년 옛소련 지배아래원리주의 배타지역이 됐음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흐름들이 지정학적으로 강요된 것이라면 한편으로는중앙아시아의 내면에는 흥미있는 자기정체성 인식이 있다.
이들 나라는 유럽과 아시아라는 구분을 거부한다.
“우리는 이 지역을 유라시아로 생각한다.본질은 아시아겠지만 중앙아시아는 유럽이나 아시아와 구별되는 지역이다.”우즈베키스탄동방대학교의 투흘리예프 비리이스람 교수는“우즈베키스탄은 아시아나 유럽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 다.“우리는상호 동등의 입장에서라면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지 않고 투자를 환영한다.” “아시아라면 당연히 아시아의 투자를 기대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우즈베키스탄주재 투르크메니스탄 대사의 대답역시 같은 맥락이다.
[알마티=안성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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